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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낙비, 그리고 승강기 전쟁

소낙비,

그리고 승강기 전쟁

 

초창기 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할 때는 오늘날처럼 승강기 내부를 50㎜ 이상 스티로폼을 3면 벽체에 그리고 바닥에 설치하지 않았다. 그러니 입주를 받기 위해 준비하는 관리소장 이하 전기실 직원들은 승강기 손상에 마음이 타들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 글 / 장현식 (현 공동주택관리사/ 「머리철새의 울음소리」, 「머리철새 둥지를 틀다」 저자)

 

 

인양기 운행하는 날은 초비상

지금은 이삿짐을 30층 고층아파트도 해당 세대 바로 앞에 이삿짐 차량을 대어 놓고 사다리 차로 이삿짐을 운반하는 능률적인 이사짐 문화가 형성되었지만 초창기에는 인양기(곤도라)로 운반해야 했다. 인양기 화차 양끝에 로프를 매어 고층부에 올라가면서 창문 난간 즉, 화분 받침대에 충돌하지 않도록 양쪽에서 잡아 당겨야 했는데 만약 한 사람이 힘에 부쳐 놓치기라도 하면 영낙 없이 화차가 화분 받침대와 난간에 충돌하여 파손된 유리조각들이 떨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인양기 운행 시는 입주할 사람들에게 일체 근처에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입주 안내문에 주의사항으로 공지했다. 그럼에도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는 인양기 리모콘을 조작하는 전기실 직원이 소리소리를 질러 가면서 막아야 했다. 또한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인양기 운행을 할 수가 없다.

 

 

입주기간엔 모두 비상근무 체제

보통 입주일은 1개월로 잡고 약 입주 15일 전부터 준비를 하는데 특히 여름철 입주를 받을 때의 관리소장은 마음 속으로 입주가 끝날 때까지 비가 오지 않는 쾌청한 날이 되기를 빌게 된다. 그리고 입주 안내문을 만들어 입주세대 주소지에 발송하는 것은 물론 전화로 입주 예정일을 확인하고 가급적 토·일요일을 제외한 날 이사 오기를 유도한다. 그러나 직장인들은 토·일요일이 휴무일이므로 거의 이날을 입주일로 정하게 된다. 입주기간 동안에는 경비실이나 기관 전기실 직원 모두 비상근무 체제로 설득하여 토·일요일도 출근해 입주 대비를 해야 한다. 왜냐하면 분명 인양기 줄을 잡는 사람 2명은 입주자가 구해와야 하는데 급한 걸음에 그냥 이삿짐을 싣고 오는 세대도 있어 숙련된 관리소 직원들이 대신 줄을 잡아 주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빗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면 먼저 해달라 아우성

여기에 입주자에게 꼭 필요한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 있다. 이삿짐을 운반하는 인양기는 옥상의 고정 벨트에 의해 해당 세대의 이삿짐을 운반하려고 좌우로 이동하여 작업을 하는데 이 이동시간을 최소화 하기 위하여 관리소는 예정일 이삿짐이 들어오는 순서대로 운행하는 것으로 번호표를 배부해 주게 된다.

그런데…, 주차장에 이삿짐들을 내려 놓고 차례를 기다리다가도 시커먼 구름이 몰려 오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관리소로 이사할 입주자들이 쳐들어 오는데 순서고 뭐고 따지지 말고 인양기 위치에 있는 이삿짐부터 올리라고 아우성이고 번호표가 바로 다음 순서인 입주자는 빨리 인양기를 옮겨 내 이삿짐부터 올리라고 아우성이다. 성질 급한 이들은 관리소장이 멋대로 한다고 멱살까지 잡으려 대든다.

이 난리는 인양기 대수가 많을수록 더 복잡해 진다. 이미 주차장에 이삿짐을 내려놓은 세대들은 사실은 간단한 물건이나 중요한 것들은 이미 승강기를 이용해 옮겨 놓는다. 문제는 소낙비가 쏟아질 때의 파장이다. 혹시나 해서 비닐로 덮어 놓거나 담요로 덮어 놓았어도 소낙비가 내리면 주차장 바닥으로 물이 스며든다. 이때부터 이사를 오는 당사자나 축하하러 찾아 온 친척이나 인양기 줄을 잡기 위해 온 사람까지 달려들어 그 비를 흠뻑 맞으며 장롱, 화장대, 냉장고, 피아노, TV 등 승강기가 설치된 입구마다 옮겨 실어 올린다. 관리소장이 관리소 밖에서 우산을 쓰고 이 장면을 바라보노라면 만감이 교차하면서 밀려오는 고통을 겪는다. ‘아!저 큰 장롱을 실어 올리다가 승강기 내부가 얼마나 손상을 입을 것인가?’ 직업상 어쩔 수 없다.

 

 

입주일 이후 승강기는 상처투성이

이 곤욕을 치르고 난 후 관리소장이 각 출입구마다 순찰을 하면서 우선 승강기 내부를 살펴보면 거의 다 벽면에 긁힌 자국이 나 있고 천장 패널은 깨져 있고 바닥면은 손상을 입어 보기 흉하게 되어 있다.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도어 레일. 오물이 잔뜩 들어가 있어 자주 고장날 것이 우려되기도 했다. 비상계단 1, 2층을 보면 급한 대로 얼기설기 들여다 놓은 이삿짐이 말 그대로 장터 같이 어지럽다.

지금 내가 근무하는 곳에서 이삿짐 차량이 사다리차와 함께 들어오는 것을 보면 불현듯 초창기 소낙비 쏟아지던 날 입주를 받을 때 곤욕을 치르던 승강기 전쟁이 생각이 나 쓴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