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진단 보고서
피난시설과 대피공간은 잉여공간이 아니다
2017년 말부터 2018년 초까지 건물의 화재 참사로 인한 안타까운 뉴스를 유난히 많이 접했다. 화재 참사의 원인은 여러 측면에서 조명되었지만 건물의 문제 중 피난시설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여 인명피해를 키운점 은 피난시설의 올바른 인식에 대 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따라서 건축물의 피난시설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또 다른 화재 참사를 막기 위한 작은 단초라고 판단할 수 있으며, 관련하여 「건축법」 규정을 살펴보려 한다.
글. 이재인(명지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피난시설 설치와 대피공간의 확보
「건축법」은 유사시 건축물에서의 탈출에 관하여 2가지 상황을 상정하고 있다. 첫 번째는 유사시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스스로 피난을 하는 경우이고, 두 번째는 사람들이 밀집해 있는 아파트나 대규모 건축물의 경우로서, 건축물 이용자들 중 일정 사람들은 피난시설을 이용해서 안전하게 탈출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가정한다.
첫 번째 상황의 규정 목표는 막힘없는 피난동선의 확보에 목표를 두고 있으며, 「건축법」에서는 이를 ‘피난시설’이라고 부른다. 유사시 피난동선 확보를 위한 ‘피난시설’은 출구, 복도, 계단, 대지안의 통로가 이에 해당하며, 건축안전 확보를 위해 일정건축물에 한하여 건축허가요건으로 작동한다. (「건축법」 제49조 제1항)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용도 및 규모의 건축물과 그 대지에는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복도, 계단, 출입구, 그 밖의 피난시설과 소화전(消火栓), 저수조(貯水槽), 그 밖의 소화설비 및 대지 안의 피난과 소화에 필요한 통로를 설치해야 한다.
두 번째 상황은 고층건축물(30층 이상이거나 120m 이상인 건축물)이나 공동주택처럼 거주자들이 밀집한 경우로서 피난시설의 확보만으로는 유사시 건축물 이용자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고 「건축법」은 판단하고, 당해 건축물은 피난시설의 설치는 물론이고 나아가 일시적인 ‘대피공간’ 확보를 의무화하고 있다.(「건축법」 제50조의2) ‘대피공간’은 유사시 안전한 장소로 탈출 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우선 일시적으로 피할 수 있는 일정규모의 공간을 건축물 안에 마련해 두도록 하는 것으로, 추후 소방관 등 외부의 도움으로 탈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건축물에서의 안전한 피난 개념과 탈출 경로 규정
유사시 건축물에서의 안전한 피난이란 단지 건축물 밖으로 탈출하는 개념이 아니며, 건축물 내에서 안전한 장소인 도로 또는 공공공지(公共空地)에 이르는 경로가 막힘이 없어야 한다.
따라서 「건축법」은 막힘 없는 탈출경로 확보를 위하여 3가지 유형의 규정을 하고 있다. ①피난시설: 건축물 내부(거실)에서의 대피통로(계단[직통계단, 피난계단, 특별피난계단, 옥외피난계단], 복도 및 보행거리 등)를 확보하기 위한 규정, ②출구: 건축물 내부 상호간(거실-복도 또는 복도-계단실) 및 내부에서 밖으로 탈출하기 위한 문 규정, ③대지안의 통로:건축물의 피난층(보통은 1층)에서 안전한 장소까지 이동하거나 소화(消火) 활동에 필요한 통로를 확보하기 위한 규정.
「건축법」 상 피난층: 피난층에 관한 법률적 정의는 「건축법」과 소방법상의 정의가 차이를 보이는데, 소방법에서는 피난안전구역을 피난층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① 「건축법」 정의: 직접 지상으로 통하는 출입구가 있는 층 및 피난안전구역(「건축법 시행령」 제34조 제1항)
② 소방법 정의: 곧바로 지상으로 갈 수 있는 출입구가 있는 층.(「소방시설 설치ㆍ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2조 제2호)
건축물의 대피시설은 잉여공간이 아니다
대피시설은 유사시 사람들의 대피에 이용할 목적으로 설치기준이 마련된 시설(공간)이다. 따라서 평상시에는 시설의 규모가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며, 잉여시설(공간)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때문에 피난계단이 2곳이 설치되어 있는 경우 한 곳을 임의로 막고 그 앞에 물건을 적치하는 등 창고처럼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며, 계단실을 적극적으로 막지 않더라도 계단실 앞에 자전거 등 생활용품을 놓아두는 행위는 유사시 큰 화를 불러올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또 아파트의 발코니 확장이 합법화 된 이후 발코니의 일부(2㎡~3㎡)를 대피공간으로 하도록 규정(참고)하고 있으나 이를 수납공간 등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또한 소탐대실일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참고) 공동주택 중 아파트로서 4층 이상인 층의 각 세대가 2개 이상의 직통계단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에는 발코니에 인접 세대와 공동으로 또는 각 세대별로 다음 각 호의 요건을 모두 갖춘 대피공간을 하나 이상 설치하여야 한다. 이 경우 인접 세대와 공동으로 설치하는 대피공간은 인접 세대를 통하여 2개 이상의 직통계단을 쓸 수 있는 위치에 우선 설치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