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승강기 안전 공모전」 최우수상(장관상) 수상작
에스컬레이터에서의 실수담
글 박동경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을 얻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예전에 없었던 여유가 생기는 통장 잔고를 보며 친구들과 제주도 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이었어요. 평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캐리어 가방을 가득 채워 아침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여느 때처럼 지하철을 이용하게 되었고 사건은 에스컬레이터를 올라탔을 때 일어났습니다. 여행의 설렘에 들떠 스마트폰으로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는데 에스컬레이터 밑에서 비명소리와 함께 ‘와장창’하고 무언가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한참이나 멀어진 에스컬레이터 탑승구를 보았습니다. 순간 머리가 하얘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친구들과의 메시지에 정신이 팔린 사이 제 옆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던 캐리어가 밑으로 굴러 떨어지며 뒷분들에게 돌진해 덮친 것이었습니다. 저는 역주행으로 정신 없이 뛰어 내려갔습니다. 이미 계단은 제법 높은 위치까지 올라간 후였습니다. 캐리어에 얼마나 큰 가속도가 붙었을지 상상이 되었습니다.
밑에 계셨던 분은 젊은 여자 승객과 그 여자의 어머니였습니다. 캐리어에 길게 뻗어 나온 손잡이가 어머니 분의 손을 강하게 내려친 것이었습니다. 그 난리에 그 분들이 들고 계시던 보자기가 떨어지며 큰 소리가 났던 것이고요. 젊은 여자 승객은 갑작스런 상황에 어쩔 줄을 몰라 하셨고 저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현장에 역무원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셨고 짐들을 사무실에 옮긴 후 직접 저희를 역에서 가까운 정형외과로 데려다 주셨습니다. 정말 친절하신 분이셨습니다.
사람이 많지 않아 어머님은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짧은 사이에 어머님의 손엔 퉁퉁 붓기가 올라왔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뼈에 큰 부담은 가지 않았지만 얼마간 깁스를 하기를 권하셨습니다. 당연히 그에 따랐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깁스 준비를 하러 어머님과 함께 진료실로 들어 가셨고요. 저와 함께 남게 된 여성 분이 그때서야 긴장이 풀리셨는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셨습니다.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를 드렸더니 그 때문이 아니라고 하시더군요. 굴러 떨어지는 캐리어를 봤는데 너무 갑작스러워 자기도 모르게 몸을 피했다고 자책을 하시는 게 아니겠어요?
자기가 피하면 뒤에 있던 엄마가 다칠 걸 알면서도 그랬다면서 말입니다. 얼마 뒤 깁스치료를 마친 어머니께서 나오셨고 당신은 오히려 따님에게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음식을 만들어 왔는데 자기가 캐리어를 피하지를 못해 모두 버리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따님은 지방에서 올라와 혼자 지내며 대학입시 준비를 하던 재수생이었습니다. 따님의 생일이 며칠 전이었는데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 미안하다며 직접 집 밥을 손수 지어 당신 쉬시는 날 올라 오셨던 것이고요. 딸의 공부에 지장을 줄까봐 서울에서 한잠 주무시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루 동안이라도 오래 보시려고 새벽차로 오셨던 것입니다. 우린 역 사무실로 돌아가 도와주신 역무원 분께 인사를 드리고 짐을 찾았습니다.
역시 어머님의 음식은 바닥에 떨어지고 짓눌려 버려진 뒤였습니다. 연락처를 교환하고 추후 발생하는 병원비와 각종 문제에 대해 제가 책임을 지겠다고 몇 번이나 말씀을 드렸습니다. 너무나도 죄송스런 마음에 모녀 분께 밥 한라도 대접해드리려 했지만 아무래도 당시 상황이 불편하셨는지 거절하시더라고요. 오히려 저에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두 분은 먼저 길을 떠나셨습니다. 전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 여행을 취소했고요.
두 분에게 해를 가하고 차마 여행길에 오를 수 없었습니다. 친구들도 이해해 주더라고요. 하릴없이 집으로 걸음을 향했고, 그 길 내내 공포스런 생각들을 떨쳐 낼 수가 없었습니다. 제 캐리어는 절대 가볍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떨어지는 가방의 각도가 조금이라도 달랐으면…, 그래서 따님 머리 위로 떨어졌다면…, 그 분들이 한두 발자국이라도 빨리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탔다면…. 저 두 분이라는 세상이 아주 작은 확률의 차이로 산산조각 나버릴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무서웠습니다.
제 손으로 말입니다. 그것도 스마트폰 메시지에 정신이 팔렸다는 아주 사소한 실수로 말이죠. 방에 온 종일 혼자 아무것도 하지 못하다 문득 어머니 생각에 집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무뚝뚝한 아들에게 걸려온 전화에 어머니는 이내 귀신같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고 무슨 일이 있었냐고 재차 물으셔서 진땀을 뺐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 에스컬레이터에 오를 때마다 늘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한 순간 굉장히 위험한 장소가 될 수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는 사람들, 마구 뛰어다니는 사람들, 그런 분들을 너무나도 자주 보게 됩니다.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분 한 분 발길을 멈춰가며 ‘조심하세요! 위험할 수 있어요!’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 날 이후 가끔 에스컬레이터 사고에 관련된 글을 검색하는 버릇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이 공모전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제 바보 같은 실수담이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을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주의를 해야 합니다. 뛰지 않아야 합니다. 손잡이를 꼭 잡아야 하구요. 에스컬레이터의 계단 폭은 넓지 않습니다. 조심하세요! 위험은 늘 가장 익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됩니다. 안전제일!
추신) 어머님의 손은 나으셨고요. 다음 해 따님은 대학에 합격하셨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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