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황진미(영화평론가)
‘헐크’는 1962년 미국 ‘마블코믹스’사에서 출판된 만화책 캐릭터로 처음 등장하였다. 1977년부터 1982년까지 미 CBS에서 방영한 <두 얼굴의 사나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널리 알려졌는데,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도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다. 어린 시절 나도 박사가 헐크로 변신하는 짧은 순간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흥분을 느꼈다. “정말로 화가 났을 때 나도 저렇게 변신해서 날 화나게 한 사람들을 혼내 주면 좋겠어”라는 나의 말에, 조숙한 언니는 “좋긴 뭐가 좋냐, 원래 박사였는데 도망자 신세가 되었으니 얼마나 쓸쓸하냐”고 답을 했더랬다. 언니는 헐크역할은 괴물이 아니라 유명한 보디빌딩 선수라는 말까지 덧붙여 나의 판타지를 홀딱 깨버렸다. 이후 나는 헐크를 보면 변신의 흥분보다는 변신이 끝난 후 살던 곳을 떠나 매회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는 베너 박사의 쓸쓸함이 더 가슴에 와 닿았다.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비극이 되어버린 이안 감독의 <헐크>
‘헐크’가 영화화 된 건 2003년이었다. <결혼피로연> <와호장룡> 등을 찍은 대만 출신 이안 감독이 연출을 맡으면서, 전작에서 가족문제에 천착했던 이안 감독이 헐크를 어떻게 변주할지 많은 사람들의 흥미가 모아졌다. 영화가 개봉되자 관객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영화의 주볼거리인 헐크가 영화가 시작된 지 40분이 넘어서야 등장한다는 점이 가장 큰 불만사항이었지만, TV시리즈에 비해 엄청나게 몸집이 커지고 체력도 강해진 헐크의 시각효과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탱크를 때려 부수고, 사막의 골짜기를 통통 날아다니는 보라색 팬츠를 입은 ‘슈렉’이라니! 이안 감독 특유의 가족문제에 대한 천착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내가 네 아비다’가 몇 번이나 강조되며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전면에 깔리고, ‘내 안에 무엇인가 있다’는 실존적 고뇌가 되새김질되었다. 이안 감독의 <헐크>는 마블코믹스 출신 슈퍼히어로보다는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고전적 비극으로 보였다.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미국 사막 한가운데 군사시설에 속한 실험실에서 인간병기를 만드는 연구를 하던 박사가 금지된 인체실험을 자신의 몸에다 한다. 박사는 임신한 아내가 아들에게서 이상 징후를 발견하는데, 실험실 폭발로 감마선에까지 노출되자, 아버지는 아들을 죽이려 한다.
이를 막던 아내가 아들 대신 죽고, 아버지는 투옥된다. 아들은 다른 가족으로 입양되어 자라지만 운명처럼 과학자가 된다. 그는 또다시 치사량의 감마선에 노출되지만 죽지 않고 깨어난다. 그리고 “내가 네 아버지”라는 중늙은이를 만난다. 그는 아들을 자극하여 잠재된 헐크를 끄집어내려 한다. 비로소 헐크로 변신하자, 군 당국은 그를 연구대상으로 삼으려 하고, 실험실을 탈출한 헐크는 군과 대치하다가 사막으로 사라진다. 이후 남미의 정글로 들어가 “날 화나게 하지 마시오” 하는 멘트를 남기며 쓸쓸히 살아간다.
‘헐크’의 기원은 늑대인간?
이안 감독의 <헐크>는 마블코믹스의 슈퍼히어로라기보다는 ‘늑대인간’과 더 친연성을 갖는다. 갑자기 아들 앞에 나타나 인간 본성에 관한 궤변을 늘어놓는 아버지의 이름은 탈보트이다. 늑대인간 영화들의 원조인 조지 와그너 감독의 <울프맨>(1941)에서의 아버지와 같은 이름이다.
이안 감독의 <헐크>에서 주인공은 유전자 변이와 감마선 노출로 변종생물체가 되었고, 분노와 흥분이 고조되면 불가항력적으로 돌변하여 닥치는 대로 때려 부순다. 그리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올 때는 상의가 실종된 채로 낯선 곳에서 깨어나곤 한다.
늑대인간의 변신과 유사한 점이다.
늑대인간이나 헐크로 돌변한 상태에서 본래의 인격이나 이성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돌변하기 전 품었던 분노의 대상이 누구이며, 누구를 보호해야 하는지 정도의 실낱같은 기억이 남아있을 뿐이다.
늑대인간이나 헐크로 변한 상태에서 그를 지배하는 것은 순수한 분노이며, 늑대인간과 헐크는 원초적인 분노의 감정으로 똘똘 뭉쳐진 정념의 존재이다.
분노조절을 못하는 당신은 헐크 혹은 늑대인간?
늑대인간이나 헐크의 변신은 어린아이들의 분노발작이나 성인들의 분노조절 장애와 닮은 점이 있다. 분노조절 장애는 분노를 품거나 표현하는 방식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병적 상태를 말하는데, 과거에는 지나친 억압이 문제가 되었지만 요즘은 지나친 표출이 문제가 된다. 소위 ‘다혈질’로 분류되는 이들은 폭력 상사나 ‘진상’고객, 폭군 같은 아버지나 애를 쥐 잡듯 하는 엄마 등이 될 가능성이 높다.
분노조절을 잘 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훈련이 필요다. 무엇보다 자신의 분노표출이 일종의 폭력임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잠시 멈출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제 3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참을 인(忍)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있다. 자극으로 분노가 폭발할 때 보통 30초안에 일련의 행동들이 나타난다고 한다.
참을 인(忍)자 세 개 쓰는 동안 30초의 임계시간이 흘러갈 테니, 살인도 면하게 된다는 말이니 일리가 있다. 치미는 분노로 헐크나 늑대인간이 되려고 할 때, 잠시 숨을 고르며 참을 인(忍)자 세 개를 허공에 써보는 건 어떨까. “우리 사람 되기는 어려워도 괴물은 되지 말자”는 홍상수 영화의 대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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