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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사고를 막는 공학적 접근방법, 중복설계

안전사고를 막는 공학적 접근방법, 중복설계

정리. 편집부 자료제공. 삼성전자 뉴스룸

해마다 반복되는 대형 사고의 근원에는 안전불감증이 자리잡고 있다.
위기상황에 대응하는 매뉴얼을 갖추고 있어도 ‘나 하나쯤 안 지켜도 별일 있을까?’ 하는 의식의 작은 틈까지 막을 수는 없다. 안전에 대한 비용지출과 투자를 뒷전으로 생각하는 풍토도 문제가 된다. 사람의 의식을 변화시킬 수 없다면 설계 단계에서부터 안전사고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봐야 한다.

‘대충’과 ‘제대로’의 차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는 스쿨버스 운행 매뉴얼이 있다. 스쿨버스가 철길을 건너는 올바른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건널목 100m 앞에서 비상등을 켜고 교통 흐름을 살피면서 진입한다.
  2. 철길로부터 최소 5m, 최대 15m 떨어진 곳에 일단 정차한다.
  3. 건널목을 한 번에 건널 수 있도록 기어를 변경한다.
  4. 창문과 출입문을 열고 열차가 진입하는지 살핀다. 이때 소리를 듣는 데 방해가 되는 장치는 모두 끈다.
  5.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출입문을 닫고 주위를 살피며 진입한다.
  6. 건널목을 통과하면 비상등을 끄고 창문을 닫는다.

매뉴얼에는 건널목을 건너는 도중 시동이 꺼졌을 때의 대응책도 있다. ‘열차가 접근하지 않을 때는 두 번까지 재시동을 걸어보고 실패하면 탈출한다. 열차가 접근 중이라면 즉시 앞문과 뒤쪽 비상구를 이용해 탈출한다.’는 내용이다.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해 상세하고 꼼꼼한 매뉴얼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들 역시 처음부터 이렇게 꼼꼼한 매뉴얼을 만들어 지켜온 건 아니었다. 1938년 12월 1일 유타주 소재 시더시티에 기록적인 눈보라가 몰아쳤다. 그날 스쿨버스 운전기사 페롤드 실콕스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운전대를 잡고 철길 건널목을 지나려 했다.
그는 규정대로 건널목 앞에서 정차한 후 주위를 살폈지만 눈보라 탓에 시야가 흐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 3년간 늘 같은 시간에 그 건널목을 통과했던 실콕스씨는 별 의심 없이 버스를 출발시켰다. 하지만 바로 그때 그가 몰던 스쿨버스는 시속 100㎞로 진입하던 화물 열차와 충돌하고 말았다. 열차와 충돌한 버스는 800m를 끌려갔고 25명의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건널목 직전 차량 출입문을 여는’ 규정은 이 사고를 계기로 마련됐다. 악천후로 시야가 제한된 상황에서도 기차 소리는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로 치면 미국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일단 고치기 시작하면 제대로 고친다. 그리고 수십 년간 고친 내용을 고지식하게 지킨다. 실제로 시더시티 사고 이후에도 미국에선 왕왕 스쿨버스와 기차 간 충돌 사고가 발생했다.
하지만 당시와 같은 실수는 80년간 한 번도 반복되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하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한 후 현장에 반영했다. 그 결과, 2018년 2월 현재 미국 전역에서 2600만 명의 아이들이 연간 64억㎞를 스쿨버스로 이동하지만 같은 기간 사고로 숨지는 아이는 8명 정도다. 물론 8명도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지만 미국 고속도로에서 연간 4만2000명이 사고로 생을 마감하는 것에 비하면 극히 적은 비율이다. 참고로 스쿨버스 통학 학생 수가 미국보다 훨씬 적은 우리나라는 2015년과 2016년 각각 8명의 아이들이 스쿨버스 교통사고로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최대 중량 700㎏ 승강기가 진짜 견디는 무게는?

중복설계(Redundancy)란 장치 하나의 고장이 설비 전체의 고장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같은 장치를 중복해 실치하는 것이다. 공학에서 시스템의 안정성(Reliability)을 다룰 때 중요한 개념이 ‘마진(Margin)’과 ‘중복설계(Redundancy)’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 벽면에 적힌 최대 중량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최대 중량이 700㎏인 엘리베이터에 체중 총량이 701㎏인 사람들이 타더라도 엘리베이터는 추락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 케이블은 최대 중량의 10배 이상을 버틸 수 있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선 충분한 마진을 남기고 경보를 울려 마지막에 탄 사람이 내리게 한다.
중복설계는 대개 ‘역전(驛前) 앞’처럼 불필요한 중복을 가리킬 때 쓰인다. 하지만 공학 분야에선 좀 다르다. 핵심 장치가 고장 났을 때 시스템 전체 고장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핵심 장치를 2중·3중으로 중복 배치하는 작업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당장은 비용이 증가하거나 효율이 떨어질 수 있지만 시스템이 고장 날 확률은 현격히 줄일 수 있다. 핵심 장치 하나가 고장 날 확률을 10%라고 할 때두 개가 동시에 고장 날 확률은 1%, 세 개가 모두 고장 날 확률은 0.1%로 현저히 낮아지는 것이다.
스쿨버스가 철길을 건널 때 출입문을 여는 것도 공학적 중복설계에 해당한다. 철길 앞에서 출입문을 여닫느라 몇 초가 더 걸리긴 하지만 차단기가 고장 나거나 악천후로 한치 앞이 안 보여도 기차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 사고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스템 이기는 건 ‘기꺼이 불편 감수하려는’ 자세

현대 사회가 거듭된 대형 참사로 고통받는 배경엔 마구잡이 개발을 거치며 효율에 저당 잡힌 안전이란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안전을 희생시켜 얻은 효율이 과연 진짜 효율일까? 어떤 경우에도 편리와 효율을 사람의 생명과 바꿀 순 없는 노릇이다. 즉 사람 생명을 지키는 일에 관한 한 3중, 4중의 중복설계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사회가 안전하게 유지되려면 탄탄한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갖추는 게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그 시스템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자세 아닐까? 말하자면 ‘정신적 중복설계’가 필요한 셈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쉽고 편한 것부터 찾게 마련이다. 하지만 때로 ‘나’와 ‘우리’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