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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안녕’하기 위하여

우리 모두

‘안녕’하기 위하여

 

 

■ 글 / 한지숙 (자유기고가)

 

 

오늘도 우리는 누구나 똑같이 선물 받은 ‘하루’라는 시간을 살고 있다. 지위고하와 나이의 많고 적음에 전혀 상관없이 예전이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속도로 24시간은 잘도 흘러간다. 마치 누구에게나 거져 주어진 것 같은 시간의 일률(一律) 때문에 별다른 감흥 없이 무심코 하루를 흘려 보낼 때도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이 시간은 누군가가 그렇게도 살고 싶어 했던 선물 같은 하루인데 말이다.


시간은 그렇게 누군가에게는 무심코, 또 누군가에게는 곶감 빼어 먹듯 야금야금 아깝게 흘러서 벌써 올 해의 마지막 달이 되었다. 어감은 틀리지만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똑같이 하는 인사말이 있다. 바로 ‘안녕’이라는 인사. 저물어 가는 2014년에는 작별의 ‘안녕’을, 다가오는 2015년에게는 새해맞이 ‘안녕’의 인사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가는 해를 제대로 안녕하기 위해서, 오는 해를 제대로 맞이하고 안녕할 수 있기 위해서는 ‘안녕’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제강점기를 경험하고 전쟁과 기근을 경험한 우리 조상들은 서로 ‘밤새 안녕(安寧)하신지’가 최대의 관심사였다. 만날 때와 헤어질 때를 구별하지 않고 똑같은 말로 ‘안녕’의 인사를 건네는 것은 무탈하고 평안을 기원하는 우리 조상들의 깊은 바람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과연 2014년에게 제대로 안녕의 작별 인사를 고할 수 있을까. 그냥 별 의미 없이 누군가를 만났을 때, 혹은 헤어질 때 ‘안녕’이라고 무심코 내뱉듯 했던 인사가 요즘 들어서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정말 안녕한 걸까?’


결코 잊지 못할 엄청난 사건 사고들을 겪어야 했던 2014년 한 해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가 마음 저리고 힘들었을 한 해였다. ‘세월호 사건’ 이후로도 끊임없이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로 사람들은 여전히 불안한 마음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 안전을 장담할 수 없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 냉랭함 속에서 맞이하는 이 겨울은 더욱 춥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더욱 나와 내 가족 뿐 아니라 주변 이웃에게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계절이다. 이웃의 ‘안녕’을 진정으로 살피기 위해선 마음에서 시작해 행동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

 

 

 

 

미국 필라델피아 한 거리엔 올 해로 생긴지 30년이 넘은 ‘트래버의 쉼터’라는 노숙자들의 쉼터가 꾸며져 있다. 지금도 여전히 노숙자들에게 좋은 쉼터가 되고 있고, ‘트래버 캠페인’이 되어서 노숙자문제 복지 정책의 좋은 실마리가 되어 주었다. 이 일은 30여 년 전, 한 작은 소년 ‘트래버’의 용기있는 행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필라델피아의 추운겨울,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트레버는 뉴스 속에서 나온 추위에 떨고 있는 노숙자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을 느낀다. 그리고 즉시 행동에 나선다. 부모에게 도움을 청해서 집 안의 담요를 싸들고 집 주변의 노숙자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이 담요를 들고 너무나 고마워하며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면서 계속해서 그 일을 해야 할 필요성을 간절히 느끼게 된다.


부모를 비롯해 주변의 어른들은 처음에는 칭찬했지만 트래버의 이런 행동이 적극적으로 계속되자 난색을 표한다. 지역에서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과 사회단체까지도 곤란해하기 시작했다.

 

“사회복지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그런 접근방법은 일시적인 해결책일 뿐이예요.” 그러나 트래버
는 이렇게 대답한다. “추위에 떨며 당장 길에서 얼어죽게 생긴 그분들에게 물어볼께요. 지금 담요가 더 급한건
지, 복지정책을 세운다음 도와드리는 게 더 좋을지를요.”

11살짜리 꼬마 트래버의 담요로 시작된 이 일은 그의 가족은 물론 헌신적인 봉사자들이 모여 정식으로 ‘트래버 캠페인(Trevor’s Campaign for Homeless)’을 만들었다. 일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트래버 캠페인은 계속되었고 지금까지도 많은 노숙자들에게 도시락과 잠자리가 제공되고 있다. 한 꼬마의 용기 있는 작은 움직임이 지역사회를 움직이게 한 놀라운 씨앗이 된 셈이다. 우리는 때로 마음은 있지만 여러 가지 상황과 신념에 갇혀 선뜻 행동에 옮기지 못할 때가 많다. 당장 그들에게 필요한 건 언 몸을 녹여줄 따뜻한 담요와 밥 한끼인데 말이다.


이런 저런 어려움을 겪고 아픔을 간직한 채 흘러가는 2014년, 트래버처럼 용기 있게 내 주변 이웃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 수 있다면, 우리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치유되고 서로 진정어린 안녕의 인사로 올해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