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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민속마을을 찾아서

멋과 풍류가 있는 곳

전국 민속마을을 찾아서

 

 

2월은 우리 민족 고유의 명절인 설이 끼어 있는 달이다. 명절이 다가오면 누구나 마음이 들뜨게 된다. 모처럼 모인 가족들과 무엇을 하며 보낼지 계획을 짜보게 된다. 고향이 있어 즐거운 설. 경제 위기의 한파가 아직도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그래도 설은 설이다. 설이 오면 그리운 가족과 친지를 만나기 위해 긴 귀향 행렬을 이룬다. 특별히 가야 할 고향이 없는 대도시 토박이나 실향민들에게도 설은 아련한 향수로 다가온다. 어렵고 힘든 시절이지만 설은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는 묘한 힘이 있다. 이번 설 연휴는 휴일이 끼어 있어 대체로 긴 편이다. 차례 지내고 친지들 만나고 하다 보면 맘 편히 쉴 여유가 없지만 잠시 시간을 내어 고향 근처 민속(한옥)마을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그곳에 가면 바쁜 삶에 얽매여 느끼지 못했던 살가움이며 우리네 기억에서 잊혀져간 갖가지 민속놀이도 즐길 수 있다. 또한 군불 땐 온돌방에서 하룻밤 묵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설 연휴에 가볼만한 민속마을 4곳을 소개한다.


■ 글 / 김초록 (여행작가)

 

 

 

 

옛것의 아름다움과 소박함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 했던가. 경주시 강동면 양동리에 가면 이런 말이 새삼 마음에 와 닿는다. 가옥마다 조상의 손때가 그대로 묻어 있어 푸근함이 느껴진다. 경주의 다른 유적이 신라시대의 산물이라면 양동마을은 조선시대의 찬란한 문화가 고스란히 숨 쉬고 있다. 언덕에 올라 마을을 바라보니 지붕 선이며 돌담길이 하나같이 단정하다. 양동마을에는 현재 150여 호의 전통가옥들이 설창산(165m)을 병풍 삼아 자리를 잡고 있다. 여강 이씨(驪江 李氏)가 80여 호, 월성 손씨(月城 孫氏)가 20여 호며 나머지는 외지인들이다. 옛날 왕궁 같은 대갓집이 있는가 하면 소박해서 좋은 기와집과 초가집들이 대부분이다. 텃밭이 있고 암소가 여물을 먹는 마굿간이 있으며 재래식 변소에 시대상을 반영하듯 경운기, 트랙터, 자동차도 보인다.

 

 


양동마을이 유독 돋보이는 것은 문화재가 많다는 점이다. 1백50여 채의 가옥 중 2백년 이상 된 가옥이 54채에 이른다. 고가 중 무첨당(無添堂), 향단(香壇), 관가정(觀稼亭)은 보물로 지정돼 있으며 조선 성종 때 지어진 월성 손씨의 종가인 손동만 가옥을 비롯해 회재 이언적 선생의 자취가 어린 심수정(心水亭), 이향정, 낙선당, 이원복 가옥, 수졸당, 강학당 등 지키고 보존해야 할 중요민속자료도 12점이나 된다. ㅁ자형 건물인 향단은 이언적이 경상감사 재임시 지은 집이고, 관가정은 우재 손중돈이 지은 고택이며, 물봉골 언덕에 자리잡은 무첨당은 여강 이씨 대종택의 사랑채로 회재 선생의 선친인 이번(李蕃)이 살던 곳이다. 마을 가장 안쪽에 있는, 경주 손씨(孫氏) 종가인 서백당(書百堂)은 54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양동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집이다. 마당가에 서 있는 수백 년 된 향나무와 종부의 손 때 묻은 장독대, 빛바랜 기둥과 주춧돌은 540년을 견뎌내고도 그 품위와 넉넉함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양동마을은 배산임수형의 지세로 봉화 닭실, 안동 하회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명당으로 꼽힌다. 설과 대보름 같은 명절에는 마을에서 떡메치기, 한지공예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양동민속정보화마을 홈페이지(www.yangdong.invil.org). 양동마을 인근에는 회재 이언적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지은 옥산서원(玉山書院)과 회재 선생이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에 내려와 살던 독락당(獨樂堂, 보물 413호),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인 정혜사지 13층 석탑(국보 40호)이 있다.

 

◆가는 길: 중앙고속도로 금호분기점→경부고속도로 도동분기점→대구 포항 고속도로 포항나들목→28번국도(강동방면)→양동마을. 경주역에서 양동마을까지 버스 운행, 7분 간격, 40분소요.

 

 

 

체험이 있는 정겨운 마을

 

 

 

아산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곳이다. 오랜 세월 남아 있는 전통문화는 아산의 자랑이자 자긍심이다. 옛 사람들의 소박한 삶을 엿볼 수 있는 외암민속마을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부터 부락이 형성되어 지금껏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충청도 고유의 주거 방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다. 외암리는 고향을 떠나 도시에 삶터를 둔 현대인들에게 진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코흘리개 시절 논두렁 밭두렁을 뛰어다니며 놀던 추억이 아슴하게 그려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이 마을은 풍수학적으로도 뛰어난 지세(地勢)를 보여주고 있다. 마을을 둘러싼 설화산과 돌담, 생명들이 뛰노는 실개천과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디딜방아 등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 듯하다.

 

마을 고샅길로 들어서면 먼저 소박한 초가들이 반겨준다. 집과 집을 이어주는 돌담길과 봄을 준비하는 텃밭, 졸졸졸 흘러가는 개울물은 고향 마을에 온 듯 푸근하기 이를 데 없다. 돌담은 마을을 하나로 묶어주는 구심체 역할을 한다. 집들은 거개가 가옥 주인의 관직명이나 출신 지명을 따서 참판댁, 병사댁, 감찰댁, 참봉댁, 종손댁, 송화댁, 영암댁(건재고택), 신창댁 등으로 불린다. 특히 예안 이씨 참판댁은 조선말 참판(벼슬 이름)을 지낸 이정렬 선생이 살던 집으로, 명문가의 전통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참판댁에서 5대째 만들어오는 연엽주는 마을의 자긍심이다. 고종 황제가 즐기던 술로 집안에서는 제주(祭酒)로만 사용했다고 한다. 솔잎과 연근의 향이 조화를 이룬 이 술은 마실 때 못잖게 깰 때도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게 특징이다. 연중 다양한 체험 행사도 열린다. 떡메치기, 연날리기, 그네타기, 모내기, 씨앗파종, 감자심기, 고구마심기, 나물캐기 등등 특화된 프로그램으로 진행한다. 외암마을 홈페이지(www.oeammaul.co.kr).

 

외암리를 방문했다면 15분 거리에 있는 맹씨행단과 봉곡사에도 꼭 가보자. 맹씨행단은 조선 초기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맹사성(1360-1438)의 옛집으로 우리나라 살림집 가운데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한 집으로 알려져 있다. 맹씨행단은 원래 최영 장군이 살던 집이다. 최영 장군은 이웃에 살던 맹사성을 평소 눈여겨봐왔는데 그를 손녀사위로 삼고 집을 물려주었다고 전한다. 집안에 있는 구괴정은 영의정 황희, 좌의정 맹사성, 우의정 허조 등이 국사를 논의하던 곳이라 하여 ‘삼상당’이라고도 한다. 이 가옥은 대청이 한가운데 있고 양쪽에 방 하나씩을 두고 있는데 이런 양식은 몽고의 영향을 많이 받은 건축기법이다.


봉곡사는 아침 무렵에 찾으면 더 좋은데 수령 200여 년이 훌쩍넘은 소나무들이 내뿜는 맑은 기운이 온몸으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비틀리며 뻗어 올라간 소나무 가지 사이로 드러나는 청아한 하늘을 보노라면 세속의 시름이 절로 걷힌다.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천안나들목-국도21호(20km)-신도리코앞 사거리-읍내동사거리-국도39호(10km)-송악외곽도로-외암민속마을, 서해고속도로 서평택나들목-국도39호(28km)-온양온천(6km)-읍내동사거리-송악외곽도로-외암민속마을. 온양 버스터미널이나 온양온천역 앞에서 외암리마을(강당골), 봉곡사행 시내버스 수시 운행. 30분소요.

 

 

 

장이 익어가는 정겨운 마을

 

순창은 장류특구로 지정된 고장이다. 읍내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백산리 고추장마을은 40여 명의 장류 장인들이 전통 방식으로 장을 빚는 곳이다. 오늘날 순창 고추장을 있게 한 전통마을로, 이곳에서 만드는 고추장은 발효에 적합한 기후와 물, 손맛이 어우러져 아주 독특한 맛을 낸다. 한옥(기와집)으로 이루어진 마을은 고향마을에 온 것처럼 안온하다. 잘 단장된 마을길 좌우로는 돌담과 토종 소나무가 운치를 한껏 돋우고 집 처마에는 예외 없이 메주가 걸려있으며 마당을 가득 채운 장독대는 정겹기 그지없다.

 

마을길을 따라 죽 늘어선 고추장집들은 하나같이 시식을 겸한 작은 가게를 열어놓고 있다. 가게 안에는 찹쌀고추장, 멥쌀고추장, 보리고추장, 밀가루고추장, 마늘고추장, 고구마고추장, 매실고추장 등 다양한 고추장 제품과 된장, 간장, 청국장 그리고 고추장에 담가 숙성시킨 장아찌들이 진열돼 있어 직접 맛을 보고 살 수 있다.

 

고추장마을에는 체험관과 박물관, 장류연구소도 들어섰다. 순창 장류를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장류체험관에서는 학생들의 현장체험학습은 물론 직장, 단체, 가족 단위의 체험객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설을 갖춰 놓았다. 연중 고추장 담그기와 메주 만들기, 간장·된장·청국장·고추장을 이용한 맛있는 요리 만들기, 불린 찹쌀을 떡메로 쳐서 인절미 빚기, 쌀·옥수수·떡·밤·땅콩·누룽지로 튀밥 만들기 등을 해볼 수 있다.

 

장류 박물관에 가면 12첩 반상인 수라상(水刺床) 차림을 볼 수 있고 장 담그는 날, 세계 속의 장, 순창 장류의 역사와 인물, 세계의 다양한 고추, 옹기의 종류와 특성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순창전통고추장마을 홈페이지(http://sunchang.invil.org).

 

 

◆가는 길: 서해안 고속도로→고창· 담양 고속도로→88고속도로(담양/대구방면)→순창 나들목-순창읍-고추장마을. 경부고속도로(천안분기점)→논산/천안 고속도로(논산분기점)→호남고속도로 서전주 나들목→국도 27번 진입(구이 순창 방면)→순창전통고추장마을(4시간 소요). 버스: 전주, 광주, 담양, 남원에서 순창행 직행버스 수시 운행. 서울-순창행 고속버스 하루 5회 운행(3시간 30분소요)

 

 

 

 

느림의 미학, 담양 창평마을

 

속도가 우선시되는 복잡다단한 경쟁의 시대에 느림과 여유를 지향하는 마을이 있다. 담양 창평마을(일명 삼지천마을)이다. 삼지내 마을의 나이는 이제 500살이 넘었다. 장흥 고씨 집성촌인 창평마을에 들어서면 고풍스런 기와집이 먼저 반긴다. 이리저리 휘어 돌아간 돌담길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06년 문화재청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창평파출소 안쪽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은 돌담길 특유의 정취를 고스란히 살려내고 있다. 마을은 조용하다. 이따금 마을 어르신들이 돌담길을 따라 느린 걸음으로 오갈 뿐이다. 마을 한가운데에 자리한 ‘고재선 가옥’과 ‘고재환 가옥’은 지방 민속자료로 지정됐다. 현재 거주하는 사람이 없어 좀 흐트러진 모습이지만 전통가옥 구조를 살펴볼 수 있는 고풍스런 옛집이다.

 

고재선 가옥은 안마당과 사랑마당은 담을 쌓아 구획하였고 중문에서 안채로 들어올 때 안채가 보이지 않도록 ㄱ자 형태로 마무리한 점이 돋보인다. 사랑채 왼쪽으로는 야트막한 담장이 이어져 있는데 그 끝에 안채로 통하는 중문이 있다. 군데군데 낡은 한옥을 헐고 새로 지은 집들도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옛 멋을 잃지 않은 모습이다. 창평마을 앞 논 한가운데 세워진 남극루는 마을의 역사를 대변해준다. 1830년대에 세워진 이 정자는 원래 옛 창평동헌(현 면사무소) 자리에 있었으나 1919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운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양로정(養老亭)이라 부르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지에 건립된 팔작지붕의 2층 누각으로 담양 지방의 다른 정자와 비교해 규모가 웅장한 것이 특징이다.

 

창평마을 사람들은 농사 외에 한과, 쌀엿, 된장 등 전통음식을 만들어 팔기도 한다. 겨울철 간식거리를 위해 만들기 시작한 한과는 명절 즈음해서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라고 한다. 과일이나 야채를 조려 만든 정과를 비롯해 유과와 강정 등 종류도 다양한데 마을에 안복자한과(www.anbokja.co.kr), 담양한과(061-383-8347) 등 한과를 만드는 집이 여럿 있다. 또 다른 손맛인 쌀엿도 인기다. 마을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창평쌀엿을 알리는 간판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장흥 고씨 집안에서 만들기 시작한 창평엿은 바삭바삭하고 부드러워 입안에 달라붙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창평삼지천슬로시티 홈페이지(www.slowcp.com).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창평 나들목으로 나오면 된다. 광주에서 826번 지방도를 따라 곡성 쪽으로 가다보면 곡서면을 지나 창평면 삼천리에 도착한다. 광주 시청 앞이나 광주역에서 303번 군내버스를 타고 창평면 창평파출소 앞에서 내린다. 창평면사무소(061-380-3792, 37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