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호 보기

대원하이드로릭리프트 신명숙 사장


2013년을 여는 여성 CEO, 신명숙 사장의

엘리베이터 연가(戀歌)




대원하이드로릭리프트(사장 신명숙)는 국내 유압엘리베이터 선두주자로 86년 독일 라이스트리츠와 유압엘리베이터 한국대리점 계약을 체결, 파워유니트, 단동실린더, 다단식실린더, 유압제어밸브 등 유압시스템 부품과 이에 관한 기술을 공급해왔다. 1989년부터는 국산화에 성공, 다양한 부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2000년부터는 독일 알파사와 ‘기계실 없는 엘리베이터’ 시스템 한국대리점 계약을 체결, 우수한 성능의 구동장치 및 조정기를 국내에 보급하고 있다. 

남편(故 우선원, 1대 사장)은 아버지로서 자애롭고, 사장으로서 듬직했다. 86년 대원하이드로릭리프트(대원상사)를 설립하기 전 동남샤프, 동양엘리베이터 등에서 이사까지 지낼 만큼 전기, 기계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움직이는 발, 바라보는 관점, 사고하는 깊이가 달랐다. 덕분에 아내(신명숙 현 사장)는 집안 살림에만 주력했다. 교육열 높은 어머니였고, 꼼꼼한 주부였으며 좋은 교육·문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이사를 마다치 않은 맹모였다. 남편은 회사 설립 5년 만에 자가 사무실, 기계, 공장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회사설립 5년 만에 남편은 거짓말처럼 아내의 곁을 떠났다. 

교통사고였다. 


남편의 자리 위에 서다

슬퍼할 새도 없이 신명숙 사장은 2대 사장이 됐다. 이대로 남편의 신용을 떨어뜨릴 수는 없었고 LG산전(GS산전)과 같은 고객과의 약속도 저버릴 수 없었다.  

“막상 경영을 맡고 보니 남편이 모든 걸 너무나 탄탄하게 다져 두었더군요. 공장, 회계 분야 등 기초가 잘 세워져 돌아가고 있었어요. 전 살림하는 심정으로 매일매일 자금집행을 챙겼죠. 살림에는 이골이 난 저니까요. 어려서부터 숫자에 민감했던 데다, 꼼꼼한 편이라 매일 확인하는 것으로도 성에 안 차 일주일마다 한 번씩 다시 대조하고, 정리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직원들에게 엘리베이터를 배우다

순조로운 이륙이었다. 하지만 시련도 있었다. 문제는 사람. 믿었던 직원이 독립해서 거래처를 가로채 갔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 흔들릴 수 없었다. 오히려 공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엘리베이터 공부를 시작했다. 신명숙 사장은 ‘대원에서 처음으로 인간대접을 받았다’는 공장직원을 붙들고 말했다. “이제 여러분이 저를 좀 도와주세요. 엘리베이터를 가르쳐 주세요.” 몸을 낮춘 사장의 진심은 통했고, 지금 신명숙 사장은 업계에서 알아주는 엘리베이터 통(通)이 됐다.  

확고한 원칙, 긍정적인 사고, 도전하고 배우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근성,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신명숙 사장이 1991년부터 지금까지 20여 년간 대원하이드로릭리프트(대원상사)를 끌고 온 원동력이었다. 그녀는 믿었다. ‘풍족함은 지금 당장 누리지 않아도 된다. 나는 젊으니까. 쪼들려도 상관없다. 미래가 다 내 계획대로 되어 갈 것이니까.’ 오차 없는 설계, 정확한 부품을 향한 뼈를 깎는 노력과 맞물리면서 신명숙 사장이 꿈꾼 미래는 이제 현실이 됐다. 



MRL을 공부한 맏딸은 듬직한 동료

1997년 IMF 직전 신명숙 사장은 인천 남동공단에 제1공장에 이은 제2공장을 설립한다. 고객이던 LG산전(GS산전) 직원이 대원공장을 보고 “LG산전 창고만하다”라고 했던 말에 약이 올랐다. 

오기로 공장을 세우고 보니, 처음엔 모든 것이 휑했다. 하지만 곧 위기란 놈이 기회로 찾아왔다. 바로 IMF. 수입부품을 쓰던 LG, 동양 등의 엘리베이터회사들이 일제히 국산으로 눈을 돌렸던 것. 대원으로서는 기회였다. 1999년엔 인천 지하철 1호선의 엘리베이터 설치까지 맡게 됐다. 그 무렵 신명숙 사장은 큰딸, 우혜령 팀장을 회사로 불러들였다. 

이후 두 사람은 ‘기계실 없는 엘리베이터(Machine Roomless Elevator)’에 주목했다. 우혜령 팀장은 2000년부터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MRL을 공부했다. 당시 국내엔 낯설었던 MRL을 도입하기 위해 발이 닳도록 뛰고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시장이 열렸다. 그런데 씁쓸하게도 5~10년간 공을 들인 그 분야에 어느새 값싼 중국산이 판을 치고 있다. 신명숙 사장은 이러한 현상이 우려스럽다.

“새로운 것, 더 싼 것을 쓰면, 더 많은 돈을 벌거나 절약할 수 있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안전을 고려하고, 용도에 맞게 쓰는 겁니다. 유럽의 경우, 대중·공용시설엔 함부로 새 장비나 기술을 도입하지 않습니다. 오랜 시일을 거쳐 안전성이 확보된 것만 사용합니다. 조금 더 멀리, 그리고 조금 더 깊이 보는 혜안이 있다면 우리도 비효율적인 상황을 만들진 않을 것입니다.” 원칙을 지키고, 믿을 수 있는 제품만 생산, 공급하겠다는 신명숙 사장의 결의가 느껴졌다. 


“우주로 가는 엘리베이터, 근사하지 않아요?”

요즘 신명숙 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건 우주 엘리베이터다. 

“우주에 정박한 인공위성을 연결해 우주관람을 하는 겁니다. 로켓으로는 못 갈지언정, 엘리베이터로 가보자는 거죠. 엘리베이터는기계, 전기, 전자시스템의 정교한 결합 위에 인간의 상상력과 꿈이 합쳐진 종합예술이죠.”

엘리베이터와 연애한 지 20여 년, 신명숙 사장의 엘리베이터 사랑은 권태기도 없이 진행형이다. 그리고 어느새 그 곁엔 딸도 서 있다. 故 우선원 사장이 만들었다는 가훈 ‘착실하게, 건강하게, 슬기롭게!’를 함께 외고 있는 둘은 아름다운 모녀이자 동업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