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머문 곳,
추억이 머물다
■ 글 / 한지숙 (자유기고가)
시간은 오늘도 여전히 흐른다. ‘지금’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시간은 과거의 모습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취를 감춘다기 보다 과거는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현재의 모습 뒤로 살짝 숨는다. 숨었지만 과거의 그림자는 여전히 보인다. 그와 같이 지금은 또 다른 미래의 숨은 과거가 될 것이다. 그림자를 드리운 과거는 어떻게든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그 영향력을 끼친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물리적인 현재를 살아 가고 있는 듯 하지만 실상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꺼번에 넘나들며 살고 있는 셈이다. 과거 없는 현재와 미래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 버지니아 리버튼의 ‘케이블카 메이벨 이야기’라는 유명한 동화가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언덕이 많고 바다로둘러싸인 항구 도시로 유명한 곳, 1973년 최초의 케이블카 ‘메이벨’이 그곳에 생겨났다. 물론 지금과 같이 하늘을 나는 케이블카가 아니고 전차모양의 케이블카다. 언덕이 많아 오르락내리락 해야 할 일이 많은 그 곳에 비가 오고 눈이 오면 미끄러지고 사고 나기 쉬운 마차 대신에 좋은 운송수단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헬리디’라는 사람에 의해 전차형 케이블카 ‘메이벨’이 탄생되었다. 메이벨은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방방곡곡에 수많은 케이블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를 구경하러 온 많은 사람들은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메이벨 타는 것을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케이블 선이 전선으로 바뀌고 자동차도 생기는 등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메이벨은 여전히 자기 일을 사랑하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꿋꿋하게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지진이 일어나고 큰 화재가 발생하는 등 도시를 재정비해야 될 상황에 처하자 마침내 더 편리한 자동차 버스 ‘빅 빌’이 생겨났고 메이벨의 옛 친구 케이블카들도 하나, 둘씩 그 자취를 감추어 결국 메이벨 혼자만 남게 되었다. 새로 생긴 버스 빅 빌은 그런 케이블카 메이벨을 보며 오래되고 쓸모 없는 옛 친구라고 비아냥거리기 일쑤였다. 버스 빅 빌은 메이벨에게 시청 사람들이 메이벨까지도 없애려 한다고 전해주었다. 그러나 메이벨을 사랑했던 사람들은 도시에서 하나밖에 없는 메이벨이 영원이 사라진다는 사실이 싫었다.
그래서 케이블카를 지키기 위한 시민의 모임을 만들었고, 전 세계로부터 케이블카를 없애지 말아 달라는 편지와 전보가 샌프란시스코 시청으로 날아들었다. 마침내 케이블카를 없앨지 지킬지를 결정하는 투표일이 되었고, 결과는 ‘없애지 말고 지키자’는 편의 압도적인 승리를 이루었다. 버스 빅 빌은 옛 친구 메이벨에게 축하를 해주며 시청 사람들이 케이블카를 더 멋지게 꾸며 줄 거라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동화지만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기에 우리에게 다가오는 의미가 남다르다. 지금도 여전히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추억과 향수를 부르는 귀여운 명물이 된 이 케이블카를 볼 수 있다.
편리함과 화려함에 익숙해져 있는 요즘 세대를 보면, 마치 과거는 없고 현재만을 위하여 살고 있는 듯하다. 옛
것의 가치와 의미를 따지기도 전에 오래되고 불편하면 경제성이 없고 세련되지 못하다는 이유로 가차없이 쓰
레기통으로 직행한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문화와 ‘새 것’들이 쏟아져 나오는 요즘 시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어느 때 보다 ‘옛 것’의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홍수같이 쏟아져 나오는 ‘새 것’ 속에서 방향성을 잃지 않고 길을 잡아줄 나침반의 역할이 바로 과거라는 이름의 ‘옛 것’이다. 가끔은 옛 것과 새로운 것 사이에서 그 가치와 경제성을 두고 끊임없이 저울질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기도 하지만, 옛 것이 오래되어 낡았고 때로는 안전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가치와 의미까지 무시당한 체 전부 폐지되어 버리기만 한다면 우리 시대의 ‘전통과 명물’은 없어질 위험이 크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재도 미래도 장담할 수 없다. 지혜로운 선택으로 과거를 추억하며 현재와 미래를 조화롭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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