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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게 살아가기 위하여

‘자연’스럽게 살아가기 위하여

 

■ 글 / 한지숙 (자유기고가)

 

 

결실의 계절 가을이다.

옛 속담에 ‘가을 중의 시주 바가지 같다’라는 표현이 있다.

곡식으로 가득 채운 중의 시주 바가지에 가을의 풍성하고 넉넉함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봄, 여름 동안에 부지런하게 열심히 땀 흘린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자연이 주는 혜택이다.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며 거스름 없이 순리대로 살아가는 우리네 이웃들을 보면 ‘자연과 참 많이 닮아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자연(自然)’이라는 글자의 한자를 살펴보아도 알 수 있듯이 자연은 ‘스스로 있는 그러한 자체’이다. 사람이 억지로 꾸미거나 조장할 필요가 전혀 없는, 있는 모습 그대로를 자연이라고 부른다. 자연의 이러한 속성 때문에 우리는 어떤 모습이나 생각이 거북스럽지 않고 꾸미지 않은 소탈한 모습일 때를 가리켜 ‘자연스럽다’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사랑하고 지향하는 대자연의 참모습은 이러한 ‘자연스러움’ 때문이기도 하다.


여러 해 전, 미국 콜로라도 주에 있는 한 사막에서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다. 황량하기로 이를 데 없었던 사막 전체가 어느 날인가부터 싹을 틔우더니 알록달록한 꽃밭으로 변신한 것이다. 여러 해 전부터 내린 폭우로 인해 사막이 물을 머금게 되었고 언제, 어떻게 그 많은 꽃씨들을 품고 있었는지 눈이 의심될 정도로, 사람의 한계와 자연의 놀라운 섭리에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광경이 벌어졌다. 쩍쩍 갈라진 땅과는 대조되는 모습으로 알록달록 예쁘게 피어난 꽃들의 신기한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이 지구상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었던 천상의 모습 같다고 표현하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그 해에 관광투어 상품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자연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은 바로 이런 순리대로 반응하는 ‘자연스러움’에 있다.

 

현대인의 각박한 삶에 휴식을 주고, 병이 든 몸과 마음에 인자한 어머니의 품과 같이 치유의 손 길을 기꺼이 내밀어 주는 것은 자연이란 존재다. 위로를 얻고 회복의 방법들을 찾기 위해서 여기저기 기웃거려보지만 결국 사람이 진정한 ‘쉼’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자연밖에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이 나무에 기대어 있는 모습의 ‘쉴 휴(休)’만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육체와 정신을 온전히 힐링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자연에 의지하고 기대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를 둘러싼 자연의 모습은 이제 점점 변하고 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의 이기적인 문명 덕분에 자연이 사람에게 더 이상 그렇게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지구 온난화와 북극의 해빙, 그로 인한 빙하 쓰나미, 동식물의 서식지 변화와 해수면의 상승, 온도변화로 인한 바다 생태계의 파괴 등 줄줄이 연관성을 갖고 야기되는 환경의 문제는 언제까지나 우리에게 베풀 줄로만 생각했던 자연이 사람에게 엄중하게 책임을 묻는 무서운 경고다. 땅과 바다, 산이나 하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지구의 모든 환경과 마찬가지로 인간 역시 그 순환의 고리에 깊숙이 연관되어 있는 피조물이며, 덜하거나 과하지 않게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존재다. 따라서 자연을 떠난 인간은 생각할 수조차
없고 자연이 피폐해지면 인간의 삶도 피폐해지는 것은 당연한 모습이다. 이제 우리는 자연과 화해할 수 있는
타협점을 최대한 적극적으로 찾아야 할 때가 왔다. 더 이상 미룰 수도, 물러설 곳도 없다.

어쩌면 자연이 주는 혜택을 마음껏 누리며 자연스럽게 살아간다는 것은 지금보다는 조금 불편하게, 조금은 부족한 것도 감수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자연과 사람 모두가 아름답게
공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작은 일부터라도 실천해야 한다.

이 아름다운 계절,
자연은 변함없이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이 되어 우리에게 청신한 얼굴을 내민다.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람 사이, 넉넉한 마음으로 서로를 보듬어주는 아름다운 이 계절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