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욕죄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최근 대검찰청은 모욕죄 고소의 남용을 막기 위한 기준 마련에 들어갔다고 한다. 인터넷 상에서 오고 가는 비판 또는 평가까지 모두 모욕죄로 고소할 수 있도록 한 현행 법규는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검찰까지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본 모욕죄,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살펴보자. 글 이은수(법무법인 ‘지우’ 변호사)
“아무것도 아닌 똥꼬다리 같은 놈”
“아무것도 아닌 똥꼬다리 같은 놈”, 1989년 대법원이 모욕적인 언사라고 판단한 표현이다. 모욕죄는 ‘공공연하게’ 이루어진 ‘모욕적’ 발언을 처벌하는 죄다. 형량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비교적 낮은 편이다.
여기서 ‘모욕’이란 구체적 사실을 적시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인격을 경멸하는 추상적 가치판단을 표시하는 것을 말한다. “너는 전과 10범의 범죄자다”라는 표현은 구체적 사실에 대한 것이므로, 이 경우 명예훼손이 문제된다. 또한 ‘공공연’하게 이루어져야 하므로, 상대방만 있거나 상대방의 가족들만 있는 방 안에서 모욕적 언사를 했다면 유포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은 발언은 모욕이 아니다. 그러나 개방된 길거리에서 모욕을 주었다면 설령 당시 이를 보고 들은 자가 없더라도 공연성이 인정된다. 인터넷 상에 쓴 글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진 언사에 해당한다.
모욕죄는 피해자 등의 고소가 있어야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이른바 친고죄다. 친고죄의 고소기간은 6개월이다. 고소가 처벌의 필수 요건이므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이어도 고소 취소가 있으면 그대로 사건은 종결된다. 이런 이유로 모욕죄 고소가 합의금을 목적으로 한 불순(?)한 시도에 악용되는 경우도 있다.
모욕적 언사로 판단된 사례들
아래 사례들을 통해 어떤 표현이 모욕적인 언사인지 각자 판단해보자.
<법원이 모욕적 언사로 판단한 경우>
- 인터넷 상에서 상대방을 “듣보잡(듣도보도 못한 잡놈)”이라고 지칭한 사례.
- 목사가 동료 목사가 있는 자리에서 다른 목사에 대해 “성경에 나오는 악신 들린 사울왕과 같다”고 말한 사례.
- 상대방에게 손가락 한 마디를 가리키며 "내가 너를 요만할 때부터 봐왔다"고 말한 사례.
- 교회에서 신도들 항의를 막은 안전팀장에게 “똥 냄새 난다”고 말한 사례.
<법원이 모욕적 언사가 아니라고 판단한 경우>
- 교사가 교무실에서 학부모에게 “부모가 그런 식이니 자식도 그런 것이다.”라고 말한 사례.
- 아나운서를 꿈꾸는 여대생에게 “아나운서로 성공하려면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고 말한 사례.
- S반도체에서 일하던 중 사망한 근로자 유족들과 함께 시위에 나선 노무사가 강제연행을 하겠다는 경찰관에게 “S사에서 돈을 받았나 보다”라고 말한 사례.
- 아파트 관리사무소장이 회의실에서 아파트 동대표 등 10여 명이 듣고 있는 가운데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 씨부리고 있네. 들고 차버릴라”라고 말한 사례.
모욕죄에 대처하는 법
앞서 든 사례들을 보아도 도대체 어떠한 언사가 모욕적인 것인지 판단하기 애매하다. 법이 이럴진대, 모욕죄 혐의로 억울하게 고소를 당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거친 표현을 했다가 억울하게 모욕죄 피의자가 된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먼저, ‘공연성’을 다툴 수 있는 경우가 있다. 모욕적 언사를 했더라도 전파될 가능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경찰관들만 있는 지구대 파출소에서 욕설을 한 경우 공연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판결례가 있다.
다음으로, 모욕적 발언이라도 해도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른바 ‘정당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위법하지 않다는 것이다. 법원 판례 중, ① 시사프로그램을 시청한 후 방송국 홈페이지의 시청자 의견란에 "그렇게 소중한 자식을 범법행위의 변명의 방패로 쓰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는 등의 표현이 사용된 글을 게시하였으나, 이는 자신의 판단과 의견의 타당함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사용된 표현이기 때문에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아 무죄라고 판단한 사례가 있고, ② 유치원의 통학버스들이 소음과 주차난 등을 야기하는 데 불만을 품고 인근 주민들이 유치원 부근에 ‘안하무인 유치원’, ‘꼴통 유치원’, ‘후안무치 유치원’ 등으로 기재된 현수막을 게시하였으나, 이는 주민들이 유치원 측에 해결책 마련을 촉구하며 자신의 의견이 타당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부분적으로 과장하여 현수막 기재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게 된 것에 불과하므로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아 무죄라고 판단한 사례가 있다.
궁극적으로 모욕죄를 폐지하고 혐오죄를 신설해야
법(특히 형법)은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모욕죄의 경우 모욕의 의미부터가 굉장히 모호하다. 모욕감은 맥락과 주관적 기대치에 따라 달라지는 개념이다. 모욕감이란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자존감)와 타인의 평가 사이에 차이가 있을 때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자신이 대통령 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서울시장 감이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모욕일 수 있지만, 거꾸로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칭찬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헌법재판소 결정의 소수의견도 모욕죄가 위헌이라고 판단하며 “풍자·해학을 담은 표현이나 부정적인 내용이지만 정중한 표현으로 비꼬는 말, 인터넷상 널리 쓰이는 다소 거친 신조어 등도 모욕죄로 처벌될 수 있어 그 규제범위가 지나치게 넓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모욕죄는 ‘과격’하거나 ‘저열’한 표현을 쓰지 말라는 취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격하고 저열한 표현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이 있을까? 독자들 각자가 앞서 든 사례들을 통해 판단해보기 바란다. 이런 이유로 필자 생각에는 모욕죄는 폐지되고 혐오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본다. 혐오죄는 장애인·동성애자 등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 집단에 대한 혐오를 표명해, 그 집단에 대한 폭력이나 차별을 불러일으킬 위험성이 높은 표현을 처벌하는 규제로 아직 한국에선 도입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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