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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사를 구분하는 또 하나의 이름, 배우 안성기

 

 

한국영화사를 구분하는 또 하나의 이름

배우 안성기

 

그의 이름 앞에 붙는 대표적 수식어는 ‘국민배우’다. 이것은 오랜 배우생활로 얻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끊임없이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것은 물론 대중과 친숙함을 유지하며, 여기에 타의 본보기가 된 것까지 더해진 최고의 찬사다. 한국영화계에서는 꽤나 묵직한 이름, 바로 ‘안성기’다. 글 이정현(스포츠한국 기자)

 

 

 

 

 

 

세밀한 감정 연기의 절정, 영화 ‘화장’ _ 1957년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했던 안성기. 그는 아역배우로 활동하다 자연스레 성인배우로 성장했다. 그의 대표작을 일일이 열거하긴 힘들지만 58년 연기생활을 이어오는 동안 수없이 많은 히트작을 내놓았고 이름값을 증명했다. 그가 내놓은 신작 ‘화장’(감독 임권택ㆍ제작 명필름)은 어쩌면 새로운 도전이다. 충무로에서 보기 힘들었던 중년 남성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자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죽음을 소재로 했다. 병들어 죽어가는 아내를 두고 젊은 부하 여직원을 탐하는 오상무(안성기)가 혐오스럽지 않은 것은 바로 안성기가 연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배우에게 여러 가지 도전이 있겠지만 ‘화장’만큼 세밀한 감정을 표현한 적은 없었습니다. 출연작은 많지만 이번 작품을 놓고 화장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죠. 감정을 연기하되 보여주면 안되고 관객에게 들켜야 했습니다. 어쩌면 가장 어려운 연기입니다. 아내의 죽음 앞에서 담담하게 절제해야 하는 연기는 쉽지 않죠. 이번 작품은 멜로이지만 멜로가 아닙니다. 미묘한 차이를 관객도 느꼈으면 합니다.”

 

 

 

한 시대를 살다간 배우로서 기억되길 _ ‘화장’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는 죽음이다. 올해로 만 63세를 맞는 안성기 역시 무겁게 와 닿는다. “평소에도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편”이라는 그는 “나 역시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고, 욕심이나 집착을 버리고 싶다”고 말했다. “소망이 있다면 마지막까지 영화배우라는 직업을 이어가는 것”이라는 소박한 바람도 남겼다. 자신을 찾아주는 대중이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도 전했다.


“기억이라는 것은 참 야속합니다. 한 세대가 지나면 잊히는 것이 순리겠죠. 그저 어떤 시대를 살아간 사람, 배우로 기억됐으면 합니다. 계속해서 기억해달라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한 사람의 배우로서 그저 묵묵히 연기할 따름입니다.”

 

 

 

 

 

 

 

젊음? 좋지만 지금이 더 나아 _ 60세를 놓고 이순이라 한다. 일을 함에 있어 사리에 잘 통하고, 순리대로 따른다는 뜻이다. 이순을 벌써 3년이자 지난 그 역시 이제는 세월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젊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냐” 물으니 “젊음이 부러우나 지금을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고 답했다. 과거에 했던 시행착오를 다시 겪을 자신감이 없다며 웃는다.


“젊음 자체는 참 좋습니다. 여러 가지에 도전할 수 있고, 실패조차 가치 있죠. 제 나이쯤되면 상황이 달라지지만요.(웃음) 어린 관객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 때를 나는 어떻게 보냈을까’라 생각하곤 해요. 그러면서 마음을 다잡아요.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지금부터라도 행복하면 된다고요.”

 

 

 


나는 국민배우가 아니다 _ 안성기는 영화배우 외에도 꽤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 외적인 것에 한눈을 팔진 않는다. 그는 자신의 활동에 대해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 말했다. 그리고 여전히 ‘좋은 영화’에 대한 욕심을 밝혔다. 좋은 토양을 만드는 것은 이를 위해 당연히 전제돼야 하는 것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배우는 욕심이 없어야 합니다. 물론 연기는 제외해야죠. 외적인 욕심이 많아지면 결국 자신이 불편해지게 됩니다. 연기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죠. 연기 선배로서 이제 제가 해야 할 일은 후배를 위한, 그리고 계속해서 ‘좋은 한국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일 겁니다. 누군가는 무엇 하러 이렇게 열심히 하느냐 물을 수 있겠죠. 하지만 이것이 최소한의 도리라 생각합니다. ‘국민배우’이기 때문이냐고요? 아니요. 저는 국민배우가 아닙니다. 그저 한 사람의 영화배우일 뿐이죠. 이건 제 개인의 신념입니다.”

 

안성기는 이제 ‘화장’을 거쳐 ‘명량’을 만들었던 김한민 감독과 손잡는다. 신작 ‘사냥’에서 그는 액션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중년의 몸이지만 할리우드 스타 리암 니슨 못잖은 박력을 갖추겠다는 각오다.


“알고 보니 리암 니슨과 동갑이더군요. 그 역시 다양한 작품에서 화려한 액션을 선보이는데 저라고 못할 것 있나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