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지난호 보기

산과 계곡에 깃든 싱싱한 여름 원주

 

 

산과 계곡에 깃든 싱싱한 여름 원주

 

 

조선 후기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원주를 이렇게 적고 있다. “경기도와 영남 사이에 끼여 물길로 운송되는 생선, 소금, 인삼과 궁전에 쓰이는 재목 따위가모여들어 하나의 도회로 되었다. 두메와 가까워서 숨어 피하기가 쉽다.” 또한 서거정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동쪽에는 치악이 서리고, 서쪽에는 섬강이 달리니, 천년고국(天年古國)이다.”라고 했다. 자연이 그득하고 삶의 생기가 넘치는 곳, 원주로 가보자.

글 김초록(여행작가)

 

 

 

travel tip 지역번호 033

가는길

영동고속도로 남원주 나들목을 빠져나와 42번 국도를 타고 원주 시내를 통해 구룡사 입구까지 가는 것이 가장 수월하다. 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중앙고속도로 남원주 나들목-원주 시내-제천 방면 5번국도 14㎞-금대계곡(영원골) 입구. 성황림은 중앙고속도로 신림 나들목에서 영월 방면으로 가다 치악산 남대봉(신림면 성남리) 쪽으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다. 용수막성당은 중앙고속도로 신림 나들목을 빠져나와 배론성지 방향(5번국도)으로 우회전해 5분 정도 가면 왼쪽 언덕 위로 성당이 보인다. 영동고속도로 여주 나들목-37번 국도-점동 사거리 좌회전-단암 삼거리 좌회전-부론면 소재지에서 문막 방향-법천사지. 법천사지에서 6㎞ 정도 더 들어가면 거론마을 쪽에 거돈사지가 있다. 흥법사지는 영동고속도로 문막 나들목으로 나와 간현 유원지를 지나 흥법사지 안내판을 보고 간다. 치악산국립공원사무소(033)732-5231.

숙박

섬구룡사 지구에 있는 구룡자동차야영장(732-4635)과 판부면 쪽의 금대에코힐링캠핑장(763-5232)은 가족 캠핑장으로 좋다. 개수대, 수세식 화장실, 산책로 등을 갖추고 있다. 좀 더 편안한 잠자리를 원한다면 원주 시내(문막)에 있는 인터불고원주(745-6333), W호텔(742-5454), 오크밸리콘도(www.oakvalley.co.kr, 1588-7676)를 이용하면 된다. 원주 외곽인 주천강과 서마니강 주변에도 펜션이 많다.

맛집

치악산 구룡사 지구 쪽에 산채백반, 더덕구이, 감자전 등을 내놓는 맛집이 많다. 전통을 자랑하는 추어탕도 원주의 대표하는 음식이다. 원주고등학교 정문 앞에 있는 원주복추어탕(762-7989, 763-7987)은 40년 이상 맛을 지켜온 식당이다. 추어탕 8,000-9,000원, 튀김 1만2,000원, 숙회(4인분) 3만원.

 

 

 

훤칠한 여름 치악산

원주의 얼굴이랄 수 있는 치악산은 사계절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진산이다. 가을 단풍이 아름다워 적악산(赤岳山)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언제부턴가 목숨을 구해준 사람에게 은혜를 갚은 꿩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까치 치(雉)자를 써서 치악산으로 불리고 있다. 고즈넉한 숲길을 따라 이어지는 골짜기는 태고 적 모습 그대로다. 정상인 비로봉(해발 1,288m)을 위시해 남대봉(1,181m), 향로봉(1,043m) 등 1천 미터 이상의 산들이 오누이처럼 사이좋게 어깨를 맞대고 있고 구룡계곡, 부곡계곡, 금대계곡 등 태고의 멋을 간직한 계곡과 신선대, 구룡소, 세렴폭포 등은 계절마다 색다른 풍치를 선사한다. 특히 구룡계곡은 치악산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곳으로 설악산이나 오대산의 그것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산행에 자신이 없다면 구룡계곡의 맑은 물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자극을 받게 될 것이다.


매표소에서 10분 정도 올라가면 나타나는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 8년(668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이다. 전설에 의하면 지금의 절터는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는 깊은 소(沼)였다고 한다. 의상이 이곳에 절을 지으려 하자 용들이 뇌성벽력과 함께 비를 내려 주위를 온통 물바다로 만들었단다. 이에 놀란 의상이 부적 한 장을 그려 소에 넣자 갑자기 물이 말라버렸다. 지금의 구룡사(龜龍寺)는 아홉 구(九)자가 불길하다 하여 거북 구(龜)자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비로봉에서 남대봉에 이르는 능선은 그 길이만도 14㎞에 이르고 주 등산코스인 사다리병창길은 이 산의 기개와 장엄함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병창’은 강원도 사투리로 절벽이라는 뜻이다. 등산 코스는 여러 갈래다.

 

구룡 매표소에서 구룡사를 거쳐 세렴폭포-사다리병창-비로봉(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가장 일반적인 루트. 그만큼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 조용한 산행을 즐기려면 부곡통제소를 기점으로 하는 곧은치골(4.1㎞)과 금대계곡-영원사-상원사(5.2㎞)로 이어지는 코스가 좋지만 이 또한 만만치 않다. 이밖에 황골매표소-입석사-비로봉(4.1㎞) 코스와 행구매표소-보문사-향로봉(2.5㎞) 코스도 권할 만하다. 하산은 세 갈래로 갈라진다. 고둔치골 부곡리로 빠지는 코스와 입석사 횡골로 내려가는 코스 그리고 향로봉, 남태봉, 상원사를 거쳐 성남리로 내려가는 종주 코스로 나뉜다. 어느 코스든지 산이 높고 험한 데다 기상이변이 심해 그에 대비한 옷과 식품 등을 갖고 가는 게 좋다.

 

 

치악산의 정기를 품은 두 계곡

산사(영원사, 상원사)의 분위기도 느낄 겸 원주 시내에서 가깝고 교통이 편리한 금대계곡(일명 영원골, 판부면 금대리)으로 간다. 원주에서 제천 방향 5번 국도를 따라 10㎞쯤 가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높은 철교인 백척교가 걸려있다. 이 철교를 지나면 바로 금대계곡이다. 영원사로 오르는 길은 차가 다닐 수 있을 만큼 평탄하지만 길이 좁다. 제법 널찍한 콘크리트길과 흙길이 번갈아 이어진다. 길옆으로 흐르는 계곡물은 눈과 귀를 맑게 헹구어준다. 쉬엄쉬엄 내딛는 발걸음이 무거워질 즈음, 저만큼 영원사가 보인다. 금대리에서 영원사까지는 2.3㎞, 어른걸음으로 40분이면 충분하다. 여름빛이 든 경내 나무의자에 앉아 먼산바라기를 한다. 산을 둘러싼 가람이 저 속세를 향해 뭔가 속삭이고 있는 것 같다.

 

영원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로 뒤쪽 산등성이에는 임진왜란 때 적을 감시했던 영원산성이 남아 있다. 영원사를 100m쯤 앞두고 나무다리를 건너 50m쯤 오르면 영원산성 갈림목. 여기서 왼쪽 길을 따라 20분쯤 오르면 영원산성(길이 4㎞)이 나타난다. 후 고구려의 궁예는 이 성을 근거로 삼아 부근의 여러 고을을 공략했으며 원주와 이웃 고을 주민들은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마다 이곳에 들어와서 성을 지켰다고 한다. 성 안에는 크고 작은 우물도 남아 있는데, 그 연원은 알 수 없다. 영원사에서 상원사를 거쳐 남대봉까지는 험준한 산길로 등산 장비를 꼭 갖추고 올라야 한다.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강림면 소재지의 부곡계곡으로 들어가 보는 것도 좋다. 치악산 계곡 중 가장 긴 계곡으로 향로봉 정상 북쪽의 곧은치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흐르는 물줄기다. 울창한 숲 그늘이 드리워져 한낮에도 기온이 오르지 않는다. 매표소부터 곧은재까지는 4㎞ 거리(왕복 3시간)로 짙은 녹음과 기암을 타고 흘러내리는 폭포, 계곡의 물줄기가 더위를 잊게 해준다. 이 길은 가파르지 않아 가족 동반 트레킹 코스로도 무난하다. 하류 쪽에는 조선 태종 이방원과 그의 스승 운곡 원천석의 자취가 서린 태종대와 노고사당을 비롯해 원천석의 부탁을 받고 태종을 속인 노인이 죄책감에 스스로 빠져죽었다는 노고소가 있다.

영원골에서 나와 제천 방향으로 가면 푸른 숲과 치악의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치악산자연휴양림이 있다. 백운산(1,087m) 쪽 찰방막골이라는 데에 묻혀 있는 휴양림은 통나무집, 산막, 황토방, 삼림욕장, 어린이놀이터, 체력단련장, 산책로 등 편의시설을 잘 갖추어 놓았다.

 

 

마음을 다독이는 숲과 성당

치악산 동남쪽 신림면 성남리에는 숲 전체가 천연기념물(제93호)로 지정된 성황림이 있다. 이 신성한 숲은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성황제가 열리는 날에만 들어갈 수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성황림을 마을 수호신을 모시고 매년 음력 4월 8일과 9월 9일에 제를 지내며 보호하고 있다. 원주시는 이 성황림에 관리인을 두고 철저히 보존하고 있는데 태고의 모습을 잃지 않은 숲에는 복자기나무, 소나무, 쪽동백, 버드나무, 고로쇠나무, 젓나무, 왕느릅나무, 들메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등등 키 큰 나무들이 빽빽하다.

 

키 큰 나무들 밑으로는 홀아비꽃대, 금낭화, 꿩의바람, 노루귀, 으름꽃 등 갖가지 야생화들이 자라고 있다. 하늘을 가린 나무들로 숲은 대낮인데도 어둡다. 면적이 5만㎡에 달하는 성황림 한복판에는 나무로 지은 성황당이 신비스러운 기운을 내뿜고 있다. 성황당 옆에는 커다란 전나무와 음나무가 서 있는데 음나무는 여성을, 전나무는 남성을 상징하며 하늘과 땅을 이어 주는 사다리 구실을 한다고 한다.


 

성황림이 있는 성남리 마을에서 신림면사무소를 지나 제천 방면으로 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종탑이 보이는데 106년 역사를 간직한 용수막성당이다. 횡성의 풍수원 성당과 원주성당에 이어 강원도에서 3번째로 생긴 성당이다. 성당 건립 직후에는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온 신자들이 3,000여 명에 이를 정도로 교세가 컸다고 한다.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식량 창고로 쓴 덕에 참화를 면했다. 성당 옆의 붉은 벽돌 건물은 용소막 마을에서 태어나 이 성당에서 세례를 받은 선종완 신부 유물관으로, 선 신부는 구약성서를 한글로 옮긴 한국 근대 천주교사의 큰 인물이다. 유물관에는 선 신부가 번역 작업을 위해 사용한 세계 각국의 성경과 책상, 카메라, 망원경 등이 전시돼 있다.

 

천리의 법천사지와 부론면 정산리의 거돈사지가 그것이다. 고려 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거돈사터에 다다르니 적막이 흐른다. 거돈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말았다. 절터에 남아 있는 불좌대와 금당터, 3층석탑(보물 750호), 원공국사승묘탑비(보물 78호)만이 저 아득한 1000년 역사를 말해줄 뿐이다.

법천사지는 거돈사지와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법천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돼 고려시대에 크게 융성한 절이다. 이 절도 임진왜란 때 전소되고 말았다. 고려 선종2년(1085년)에 건립된 지광국사현묘탑비(국보 59호)가 남아있고 그 옆에 있던 지광국사현묘탑(국보 101호)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또 하나의 폐사지는 지정면 안창리에 있는 흥법사지다. 한 때는 그 규모가 꽤 컸던 흥법사지 또한 옛 영화를 찾을 수 없다. 넓었던 터는 현재 모두 밭으로 변하고 말았는데 삼층석탑(보물 464호)과 진공대사탑비의 귀부 및 이수(보물 463호)만이 외롭게 남아 옛 자취를 더듬어보게 해준다. 흥법사지 인근에는 송강 정철이 관동팔경에서 ‘한수를 돌아드니 섬강이 어드메뇨, 치악이 여긔로다.’ 라며 수려한 경치를 찬탄해마지 않았던 간현계곡이 펼쳐져 있다. 소금산에서 시작된 삼산천이 섬강과 맞닿는 곳으로 수직 절벽과 맑은 계곡물, 하얀 백사장이 길게 이어져 있어 가족 피서지로 아주 좋은 곳이다. 간현계곡은 중앙선 철도가 통과하는 곳으로 서울 청량리역에서 중앙선을 타고 간현역에 내리면 바로 앞이 간현계곡이다.


 

이왕 폐사지 답사에 나섰다면 한 군데 더 들러볼 곳이 있다. 문막농공단지 쪽에 있는 반계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167호)다.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는 나무의 모습이 범상치 않다. 이 은행나무는 나무를 지키는 굵은 흰 뱀이 살고 있다는 전설이 있다.

 

 

박경리 선생의 자취

원주 시내 단구동에는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토지문학공원이 있다. 공원 안에는 선생이 오랫동안 머물렀던 옛집을 원형 그대로 보존해 놓았다. 박경리 선생은 이곳에서 토지의 4부와 5부를 썼다고 한다. 문학공원엔 소설에 등장하는 홍이동산, 평사리마당, 용두레벌 등이 재현돼 있어 소설 속 분위기를 잘 전해준다. 홍이동산은 ‘토지’에 나오는 아이 주인공인 홍이에서 따온 이름이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노는 동산이라는 의미이다. 용두레벌은 ‘토지’ 속의 이국땅인 간도 용정의 용두레 우물과 간도의 벌판에서 연유한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