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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동휠체어 체험기 명동 한복판에서 미아가 되다








휠체어 눈높이, 전혀 다른 세상


국민건강보험공단 인근 지사에서 휠체어를 빌려 건물 밖으로 나서는 것부터 과제였다. 휠체

어에 앉아 바퀴를 굴리는 것도 쉽지 않았다. 몇번 돌리고 나면 또 숨이 차고 바퀴는 제멋대로

굴러 엉뚱한 방향으로 나를 돌려세웠다. 건물앞에 가파른 계단이 있어 할 수 없이 지하주차

장으로 내려가야 했다. 이대로 세상 밖으로 나간다는 자체가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았다.


간신히 명동 거리에 나섰지만, 오돌토돌한 보도블록은 그 자체로 장애물이었다. 바퀴는 자

꾸 엉뚱한 곳으로 돌았다. 하지만 그 보다 더큰 장애물은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어떤 사람

들은 아랑곳 않고 옆을 지났지만, 어떤 이들은신기한 듯 물끄러미 쳐다보기도 했다. 서커스

의 곡예사도 아닌데, 뭘 그렇게 뚫어져라 볼까.

시선을 헤치기가 더 어려웠다. 그 뿐 아니라 명동에는 사람들이 많아서 길을 가기가 더 힘들

었다.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는데 휠체어에 앉으니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다 오토바이 같고,

트럭처럼 느껴졌다. 말끔하게 닦인 길이라도경사가 조금이라도 난 길에서는 이대로 휠체

어가 옆으로 구르는 게 아닐까 하는 위협감마저 느껴졌다.









작은 도움의 손길이 큰 도움이었구나


목적지를 서울역으로 잡고, 저상버스를 검색해보았다. 저상버스란 올라서는 차의 바닥이

낮고 계단이 없는 버스로, 노인과 장애인 등교통약자를 위해 2003년 도입된 버스다. 하지

만 다른 버스에 비해 숫자가 턱없이 부족했다.저상버스를 검색해준다는 어플을 깔고, 

서울역 행 버스를 기다렸다. 좀처럼 저상버스는 오지 않았다.


어플에서 알려준 저상버스가, 저상버스가 아닌 일반버스였을 때는 살짝 배신감

마저 들었다.얼마쯤 기다렸을까, 오후 2시에 건물을 나선뒤로 거리상으로는 얼마 오지도 않았는데 시

곗바늘은 벌써 3시를 향하고 있었다. 간신히저상버스를 확인한 나는 반가운 마음에 두 손

을 흔들었다. 두 손을 빠르게 놀려 뒷문을 향했다. 하지만 뒷문에서 내려온 슬로프 문턱에

휠체어가 걸렸다. 고맙게도 지나가던 행인이휠체어를 밀어주었다. 작은 도움의 손길이 더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버스 안에서도 조마조마한 건 마찬가지였다.장애인용 휠체어 고정 장치인 체어락이 있었지

만, 갈 길이 바쁜 버스기사는 손잡이를 꽉 잡으라는 신신당부를 남기고 출발했다. 내가 버스

의속도를못이겨오락가락하며당황하자,“ 그러면 제가 고정해드릴까요?”라고 묻는다. 하

지만 그러려면 도로 한 복판에서 버스를 멈춘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저“괜찮아요.”라고 말

할 수밖에 없었다. 안전 손잡이를 꽉 붙잡는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한갓진 오후 시간이라 다

행이었지, 만약에 사람들이 버스에 좀 더 있었더라면 영락없는 애물단지가 될 뻔했다.



가슴 갑갑한 무언가를 남긴 휠체어 체험


간신히 서울역에 도착해서 다시 명동으로 돌아가는지하철을 타기 위해 들어섰다. 서울역

에 계단이 이렇게 많았나? 계단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리프트를 타야 했다. 리프트를 타

기 위해서는 매번 5~10분의 시간을 기다려야했고 내려가는 대도 한 참의 시간이 걸렸다.

휠체어로 리프트를 타고 내려가는 일은 생각보다 무서웠다. 주위에 안전대도 없었고, 내

스스로 운전손잡이를 잡으며 가파른 계단을내려가야 했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공중에

붕 떠있는 느낌이었다.









지하철에 타기 위해 들어서다가 또 한 번 걸려넘어질 뻔했다. 홈이 넓어서 휠체어는 헛바퀴

만 돌았고, 문이 닫힐까봐 조급한 마음에 과하게 힘을 준 게 문제였다. 휠체어와 함께 나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건장한 남자 한 분이 잡아주지 않았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지 모를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 그렇게 소란을 피우며지하철에 타고 보니 사람들의 시선은 더욱 견

디기 어려워졌다.


명동역에 도착한 시각은 4시쯤, 평소 때면 10분, 15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을 거리가, 휠체

어를 탄 순간 서너 배로 늘어났다. 명동역은 리프트를 2번 사용해야 지상에 올라올 수 있었

다. 또한 원하는 출구마다 휠체어 리프트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전혀 다른 출구로 나와 먼 거

리를 돌아 길을 건너야 했다.

휠체어 체험을 마치고 두 다리를 땅에 디뎠을때, 기쁜 마음과 동시에 안타까운 마음도 몰려

왔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제목이 떠올랐다. 내가 오늘 휠체어 체험을 하며

느낀 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장애인을 위한 서울은 없다”였다. 문득 어떤 갑갑함이 명

동 한복판에서 나는 한참을 서있게 했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절절하게 느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