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조선은행에 설치된 화폐용 승강기가 최초
▲ 화신백화점
몸의 수고로움 없이 공간을 이동하고, 무거운 물건을 옮기겠다는 인간의 열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폭넓게 연구되고 실현되어 왔다. 아주 가까이 우리의 조상은 깊은 우물 속 맑은 물을 끌어올리기 위해 두레박을 생각해 냈다. 고대 그리스의 과학자 아르키메데스 역시 기원전 236년 밧줄과 도르래를 이용하여 사람이 당기면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를 만들었고, 나폴레옹은 궁중에 있는 의자에 밧줄을 매달아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도 오르내릴 수 있는 의자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다산 정약용이 무거운 돌을 옮기기 위해 거중기를 고안해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 밧줄과 도르래, 이 두 가지를 이용하여 사람들은 끊임없이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며 더욱 다양하고, 더욱 안전하고, 더욱 아름다운 엘리베이터로의 진화를 이루어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맨 처음으로 현대식 승강기가 도입된 것은 언제였을까? 그것은 19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5년 일본은 을사늑약을 맺어 1910년, 강제합병을 시도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화폐 금융을 예속하기 위해 중앙은행인 조선은행을 설립한다. 이 조선은행에는 화폐를 나르기 위한 수압식 승강기와 식당용 수동식 승강기가 설치되는데, 이 승강기가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식 승강기다. 일본인 도마스코지가 설치한 이 승강기는 오티스(OTIS) 제품. 아픈 식민지 역사에서 최초의 승강기를 만난다는 사실이 달갑지는 않다.
이로부터 4년 후, 우리나라 최초의 전동식 승강기이자 승객용 승강기는 철도호텔(현 웨스턴 조선호텔)에 설치되는데, 역시 오티스 제품이다.
민족자본으로는 1937년 화신백화점 엘리베이터가 최초
한국인 자본으로 설치된 승객용 승강기는 화신백화점에 설치된 것이 최초다. 당시 화신백화점은 1931년 민족자본으로 설립, 운영되다가 1937년 11월 화재로 소실된 이후 새롭게 지하 1층, 지상 6층 건물로 신축됐다.
이때 4대의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가 갖춰졌다. 당시 엘리베이터의 속도는 분당 10m 내외로 5층 건물에 올라가는 데 1분이 넘게 걸렸다. 현재 분당 1,080m까지 오르내리는 초고속 엘리베이터가 등장하는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그럼에도 대중들 앞에 첫선을 보인 엘리베이터는 진기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1910년 승강기가 도입된 이후 1945년 광복이 될 때까지 국내에 도입된 승강기는 대략 150대를 웃돌았을 것으로 유추되며 당시 승강기는 생활편의 제공이라는 목적 외에 권위를 강조하기 위한 상징물로도 그 역할을 했다. 조선총독부, 조선군사령부 등 그다지 높지 않은 건물에서 승강기를 설치한 것이다. 특히 1926년 완공된 조선총독부 건물에는 무려 12대의 승강기가 설치되었다.
일반인들, 특히 한국인들이 그나마 승강기를 쉽게 이용할 수 있었던 곳은 주로 병원이었다. 1927년 세브란스 병원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민간인 발주에 의한 승강기(오티스)가 설치됐다. 당시 승강기는 한국인은 물론 일본인에게도 진기한 문명이 아닐 수 없었는데, 신발을 벗고 이용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 조선총독부 건물엔 12대의 승강기가 설치됨 ▲ 세브란스 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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