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기안전 스토리텔링 공모전 최우수 당선작
창동역 승강기의 신화
‘2014 승강기 안전의 날’을 기념하여 안전행정부가 주최하고 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이 주관하여 진행한 ‘승강기안전 스토리텔링 공모전’에서 고남욱 씨의 <창동역 승강기의 신화>가 수필 부문 최우수 작품으로 선정됐다. 승강기를 통해 이웃이 함께 공감해 가는 따뜻한 모습을 전하고 있는 최우수 당선작 전문을 소개한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가나?’, 9월의 어느 날 창동역, 지팡이를 짚고 계단 대신 승강기로 향하는 노점상 할머니 모습이 들어온다. 계단에서 한참을 구른 아저씨 전단 꾸러미에는 눈물도 함께 있었다. 나를 비롯해 옥수수 팔던 이모님, 주변 인근 시민들까지 아저씨께 달려갔을 무렵, 아저씨 다리는 부러져 있었다. 어린 딸이 붕어빵이 먹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아저씨는 반복하셨다. ‘이런 광경이 벌써 몇 년째구나’라는 생각에도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사실 여기 창동역은 승강기 문제로 괴소문의 진원지였다. 창동역 인근은 노인 분들과 장애우들이 전국적으로 많이 거주한다. 때문에 안전한 승강기는 필수 요소다. 심지어 일반인들도 다니기 힘들 때도 있다. 출입구도 헷갈리기 쉽고, 익숙한 이들조차 계단에 의존하기에 난감하다. 경찰관, 소방관 아저씨들만 우리 안전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승강기. 바로 이 승강기 하나가 정말 많은 이들을 지켜낸다는 사실을 인지한 지 나 역시 얼마 되지 않았다.
창동역 앞에서 행인들에게 설문과 서명을 받는 모습이 멀찌감치 눈에 보이던 날을 잠시 소개한다. 담당자 중 한 여성은 노약자나 장애인들이 이용하기 불편한 창동역에 장애인, 노약자 전용 엘리베이터를 놓고 싶다고 했다. 사연 있는 일반인들도 이용 가능한 승강기였다. 환한 모습으로 설문지를 건네줬던 그녀는 휠체어에 앉아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여학생이라고 말했다. “저희 같은 사람들은 승강기가 있어야 해요. 저기 제발 도와주세요.”,
펜을 바쁘게 움직였다. “여기요.” 서명을 받던 이는 사실 한 명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꽤 많은 그룹을 이뤄 서명을 받고 있었다. 중증의 뇌병변 장애를 갖고 있다고 밝힌 여성분들도 주변에 설문을 부탁했다. 외면하기에는 ‘우리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승강기 문제에 대해 왜 이리 무심했나’라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다. 매일, 매주 매달 창동역을 비롯한 주변 아파트 단지에서 전단을 나누었고, 스티커를 붙이는 행사는 수도 없이 진행했다. 눈이 오던 날에도 그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지켰다.
사실 그들이 처음에 그 곳에서 설문과 서명을 받을 때 그 곳은 사람들의 외면과 질책도 있었다. “너희가 뭔데 여기서 이런 것들을 하느냐?”부터 “이런 걸로 고생해 봤자 되지 않는다.”는 비아냥이 격려보다 많았다. 서명을 받던 장애우를 향해 “몸도 불편한데 집에서 누워나 있으라.”는 귀를 의심케 하는 말도 심심찮게 들었다. 일부 장애인 분들조차 이런 것을 왜 하냐며 외면하는 모습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안전한 승강기가 분명 서로가 소통할 수 있는 창구입니다.”, 대답의 일부이자 전부였다. “누가 그러네요. 저보고 병신이라고. 그런데 승강기로 여러분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이 동네가 더 풍요로워질 수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해당 외침은 찬 공기를 머금고 서로의 귓가를 때렸다. 승강기가 인간과 인간을 서로 보호해주고, 그로 인해 정과 소통의 방법이 다양해진다는 이야기를 누차 역설했다.
그리고 얼마 후, 정말 거짓말 같은 광경이 벌어졌다. 아이를 업은 엄마가 서명하기에 앞서 한마디 거들었다. “한마디 거들겠습니다.”, 주변이 웅성거렸다. 아이 엄마가 말했다. “얼마 전 아이를 업고 계단에 오르다 이 아이와 즉사할 뻔했습니다.”, 웅성거림이 갑자기 울림이 되기 시작했다. “승강기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아이 엄마의 외침은 구체적이었다. 양심의 소리도 그제야 하나씩 창동역 광장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승강기 하나가 아이들의 생활도 변화시키고, 누군가의 생활에 웃음을 주며, 서로의 삶에 소통을 안겨줄 수 있음을 아이 엄마는 나지막이 되뇌고 있었다. 훗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가 목격한 바로 이날이 창동역 승강기 설치에 기폭제가 된 날이라고 한다. 이 날 이후 장애인, 비장애인 할 것 없이 공감도가 급속도로 높아지며, 본격적인 서명 붐이 일었다고 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설문과 서명은 계속되었고, 지각 있는 서울시 임원의 청원으로 이어졌다.
당시 서명을 받던 이들은 창동역을 시작으로 이용하기 불편한 1호선 도봉역과 방학역 등 다른 역들의 추가 개선 작업에도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이 사건 전까지 창동역에 승강기를 설치해달라며, 민간인들이 민원을 넣은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승강기가 뭐 그리 대수냐는 반응이 많았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승강기의 유무가 사람들의 생활을 180도 바꿔놓을 수 있다는 사실, 창동역 인근 주민들은 이 사건으로 정확히 깨닫게 되었다. 안전한 승강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 그것이 서로에게 부족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건 큰 사건이었다. 분명 관심은 사랑을 뜻하며, 사랑은 변화를 뜻한다. 젊은 사람들 역시 이용하기 매우 불편해서 환승역임에도 근처 노원역에서 약속들을 잡았던 기억들이 이제야 하나둘씩 떠올랐다. 지역 주민들까지 창동역은 승강기가 없기에 날씨가 궂은 날에는 되도록 피하라던 악명이 이제 끝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다. 지방 출장 때문에 서울 집에 급한 일이 있어, 지하철을 탔다가 창동역에서 내렸다. 못 보던 표지판이 갑작스레 눈에 띄어 살며시 웃었다. 기적이었다. 예산을 받아 설치되는 쾌거로 급기야 이어졌다. 창동역에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던 승강기 표지판. 그게 벽에 붙어있었다. “진짜네?”, 승강기 앞에 많은 분이 줄지어 계셨다.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뿐만 아니라 나이 많으신 어르신 분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지하철 게이트로 향하는 승강기의 대기열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라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계단으로 인한 사건-사고가 잦아지며 괴담이 잦아졌던 동네가 활기를 되찾은 모습이 감지됐다. 주변 상권들은 붐벼 있었고, 사람들 입가에 못 보던 웃음도 보였다. 휠체어에 기댄 여학생도 환하게 창동역을 향하고 있었다. 창동역은 승강기 하나로 안전하고 편리한 지역이 되어 있었다.
대학교에서 안전한 승강기 하나로 장애우 친구들이 소외되는 모습을 겪어봤다. 승강기가 없는 곳에서는 많은 친구들이 그 친구를 계단을 통해 돕고 또 도와야 한다. 그 도움이 너무나도 당연한 줄은 알지만, 도움과 관심이 지속적이지만은 않았다. 장애우인 내 친구 정훈이는 승강기에서 나와 함께 들었던 노래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녀석은 휠체어를 자신의 손으로 움직일 테니 넌 나랑 승강기만 같이 타고 가자며 조르곤 했다. 우리는 작은 승강기 안에서부터 우정을 나누었다. 그때 들었던 노래가 잘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녀석에게 전화해서 물었더니 바로 핀잔을 들었다. 수화기를 내리고, MP3에 있는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그 때 기억에 젖어 귀에 꽂았다. 정훈이의 웃음소리가 승강기 안에 울려 퍼졌다.
최우수작 당선작 <창동역 승강기의 신화> 당선 소감 - 고남욱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 창동역 인근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저는 유난히 승강기와 사연이 많은 편입니다. 어렸을 때, ‘승강기를 타고 있으면 우주로 간다’, ‘산타 할아버지와 만날 수 있다’는 얘기가 있어서 하루 종일 그 안에 있었던 적이 있지요. (아빠와 만나서 당황했습니다만) 대학 시절에는 교수님들께서 ‘괜찮은 여성을 만나고 싶다면 승강기를 활용하라’는 팁을 주셔서 제 후배가 무작정 실험을 단행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국가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을 나가본 적은 있지만 늘 2등 아니면 3등이었어요. 그래서 이번 수상이 정말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유선상으로 수상 소식을 전해주신 선생님께 ‘최우수상 위에 대상이나 그랑프리상 있는 것 아니냐?”’고 여쭤보기도 했으니까요. 무엇보다 수상을 통해 이 이야기를 많은 분들과 공감할 수 있게 된 것이 기쁘고 이러한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 드립니다.
몸이 불편하신 외할머니를 지하철 역에 모시고 가곤 했는데, 주변에 모시고 갈 분들이 없으면 창동역에 승강기가 생기기 전엔 빙 돌아서 가시는 것을 보았어요. 외할머니와 같은 고충을 안고 계신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창동역 승강기의 신화>는 ‘무심코 지나쳤던 일들이 겪어 본 사람 입장에서는 처절할 수 있겠구나’ 느끼게 한 창동역에서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이번 당선으로 올 해 정말 뜻 깊은 추억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어느 해보다 안전과 소통이라는 화두가 가슴 속 깊이 와닿은 한 해였습니다. 승강기안전 스토리텔링 공모전이 앞으로도 전통 있는 행사로 자리 잡으며 많은 이들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뜻 깊은 행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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