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내는 한국 승강기,
해외에서 활로 찾다!
벼랑까지 내몰린 국내 승강기업계가 해외 시장개척에 사활을 걸고 있다. 글로벌 기업의 제조시설 중국이전과 장기화된 건설경기 침체, 중소기업 단체 수의계약폐지 등으로 몇 차례 위기를 겪은 한국 승강기업계가 차별화된 기술개발과 공격적인 해외시장 개척으로 새 길을 찾고 있다.
글 양억만(한국승강기안전관리원 대외협력실 차장)
현대엘리베이터 브라질 공장 설립 통해 새 시장 개척
내수 일등기업인 현대엘리베이터(대표 한상호)는 업계가 해외에서 답을 찾은 좋은 사례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그룹의 구원투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범 현대가 중 드물게 흑자를 내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는 중국 상하이 공장도 새롭게 리뉴얼해 중국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주목된다.
최근 현대엘리베이터는 브라질 현지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성장세가 빠른 남미시장을 공약하기 위해서다. 현대엘리베이터는 브라질 암부‘히오그란지두술주 상 네오폴드시’에 엘리베이터 등 승강기 관련 생산 공장을 짓기로 했다. 지난해 3월 27일자 아시아경제신문에 보도에 따르면 현대엘리베이터는 초고속 엘리베이터에서부터 화물 엘리베이터까지 한국과 같은 수준의 다양한 엘리베이터를 현지에서 생산하기 위해 300만 달러(약 327억 원)를 투자키로 했다. 또 에스컬레이터, 무빙워크, 슬라이딩 도어 등도 현지에서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대엘리베이터는 공장 및 테스트타워도 세우기로 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브라질 진출은 신흥 경제 강국으로서 중요한 국가이기 때문이다. 한국무역협회가 발행하는 2012년 11월호‘트레이드 포커스(Trade Focus)’따르면 브라질은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성장잠재력이 높은 국가로 전 세계 GDP 3.6%(중남미 전체 GDP의 42.7%), 전 세계 무역의 1.4%, 전 세계 수입시장의 1.3%를 차지하는 골리앗 시장이다. 또한 브라질은 중남미 지역경제공동체인 남미공동시장(MERCOSUR) 및 남미국가연합(UNASAR) 회원국으로서 지역통합을 위해 세계무대에서 두드러진 활동을 하는 등 남미시장 진출의 교두보역할을 수행하고 있어 기업들에겐 매력적인 곳이다.
국내 중소기업들 발 빠른 해외시장 진출
국내 감속기시장의 70%를 선점하고 있는 해성산전(대표 이현국)은 꾸준한 기술개발과 해외진출로 이제는 40여 개 국가로 시장을 넓혔다. 해성산전은 매년 러시아를 비롯해 중국, 독일, 브라질, 인도 등 6개국에서 열리는 승강기박람회에 참여해 새로운 국제바이어를 찾아 나설 정도로 열의가 남다르다. 해성산전 이현국 대표 사무실에 는 러시아, 두바이, 인도, 브라질 현지 시간을 알리는 벽시계를 부착해 놓고 해외진출 의지를 다지고 있다. 해성산전은 현재 승강기용 감속기를 비롯해 타워크레인용, 주차설비용, 굴삭기용, 선박용, 산업기계용, 무대장치용 등 각종 기계류 감속기를 생산하고 있다.
해성산전은 해외시장 개척과 함께 기술개발(R&D)에도 공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이현국 대표는 지난해 영업이익의 3배가 넘는 100억원을 기술개발에 투자해 동종업계를 놀라게 했다. 이 대표는“시장상황이 어려울수록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를 아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해성산전이 기술개발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은 기존의 승강기용 감속기에서 풍력발전기 등 신규시장이 확대되고 있고, 감속기 분야에서는 이미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풍력발전기용 감속기는 국내에서는 현대중공업에 이어 미국 풍력발전기 제조업체인 드윈드와 납품 계약을 맺는 등 수출 활로도 이미 마련했다. 또 중국 현지기업과 합작회사를 설립해 세계최대 시장인 중국을 공략하고 있어 해성산전의 해외시장 진출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송산특수엘리베이터(대표 김운영)는 국내 특수승강기 분야에서 대표주자다. 지하철 노약자 승강기는 물론 피난구난용 엘리베이터, 경사형 엘리베이터 등 다양한 차별화 전략으로 국내외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다. 2012년‘한국 승강기안전엑스포’를 통해 선보인 비상구난용 엘리베이터‘엑스베이터(X-Vator)’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특허를 따냈다. X-Vator는 건축물에 화재가 나면 엘리베이터로 유입되는 연기나 화염, 열을 제트분사 차단막과 밀폐 패킹으로 막아 안전한 비상 대피를 돕는 특수엘리베이터다. 평상시에는 일반엘리베이터지만 비상상황에서는 X-Vator로 변신하는 이 기술은 꾸준히 한우물을 판 성과다. 2010년에는 에스컬레이터 역회전이나 과속사고를 방지하는‘에스브레이크(S-Brake)’를 개발해 성능인증을 획득했다. 이 장치는 이미 서울지하철을 비롯해 여러 곳에 설치된 상태다. 독특한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필리핀 하야트 빌딩, 중국 천진전철, 대만 총통관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백화점, UAE 아부다비 원자력발전소 등에도 다양한 특수승강기를 수출해 해외에서도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송산특수엘리베이터는 2013년 러시아승강기엑스포에서 독특한 아치형 승강도어인‘이클립스’를 출품해‘러시아승강기연합회’(NLU)로부터 최우수 부스디자인상을 받기도 했다.
인천 남동구에 있는 영진엘리베이터(대표 박유현)는 올해 미얀마에 진출했다. 이 회사는 승객용을 비롯해 전망용, 장애인용, 병원용 승강기, 에스컬레이터까지 거의 모든 승강기를 생산하는 이 분야 종합상사이다. 현재 해외판매 200대, 연간매출 50억원, 수출비중 70~80%, 해외 14개 국가에 현지 대리점을 두고 있다. 영진엘리베이터는 맞춤식 주문생산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 밖에도 제어반 생산업체인 삼일엘텍과 대성IDS, 부산의 영진엘리베이터 등은 꾸준하게 해외시장으로 보폭을 넓혀나가고 있다. 특히 영진엘리베이터는 러시아 사할린으로 알려진 유즈노사할린스크와 블라디보스톡에 영진의 승강기 150대가 설치된다. 이제 더 이상 국내시장만 바라보고서는 살아남기 힘들다는 위기의식이 한 몫을 했다.
과당경쟁·인력·자금난 등 삼중고
우리나라 승강기시장은 이미 산업공동화 됐다고 말한다. 외환위기 이후 입지를 굳힌 오티스 등 다국적 기업들이 비싼 임금을 이유로 상당수 중국 등으로 생산기지를 옮겼다. 한마디로 비싼 임금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한해 약 30만대 이상이 신규로 설치되는 거대시장 중국의 진출은 가뜩이나 쪼들리는 한국기업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한국의 승강기시장은 경기의 영향을 덜 받는 안정적인 산업 중 하나다. 이미 세워진 건물이라도 20~30년 주기의 승강기 교체로 수요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한번 설치하면 유지보수라는 수익이 나온다. 우리나라처럼‘승강기시설 안전관리법’으로 관리를 철저히 하는 나라도 드물다. 또 승강기는 자동차와 비슷한 3만여 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 부품산업 등 수요창출도 크다. 따라서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새로운 시장 개척이 위기에 내몰린 국내 기업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아직은 일부 기업들에 한정된 얘기지만, 과거처럼 내수에만 의존해서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치열한 내수 경쟁이 못 미치는 덤핑으로 이어지고 있는데다 그나마 경쟁력을 보유한 중저가 승강기시장마저도 중국기업에 빼앗기는 추세다. 신규로 우리나라에서 설치되는 에스컬레이터는 이미 100%가 중국산 제품이다.
기업성장을 가로막는 장애요인도 적지 않다. 여전히 업계의 과당경쟁으로 제살깎기식 영업이 팽배하다. 승강기 보수료는 적정단가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고된 일과 저임금으로 인해 일할 사람을 찾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특히 업계 과당경쟁은 해외로 시장을 넓히고 있는 수출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원인이기도 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어렵게 해외시장을 개척해 판매를 하면 동종의 한국기업들이 덤핑으로 제품을 팔기 때문에 함께 고사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라고 토로했다. 이제는 해외진출의 성과를 내고서도 언론에 한 줄의 보도기사를 내는 것조차 꺼려질 정도라고 말한다.
고질적인 인력난도 문제다. 승강기업계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지만 일이 힘들고 임금이 적다보니 사람을 구해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이직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사정이 이러하니 대기업에 비해 임금구조가 취약한 중소기업의 경우 숙련된 고급 기술자를 확보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이고, 신규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는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승강기 중소기업 대다수가 이중·삼중고를 겪고 있는 게 현실이다.
코리아엘리베이터컨설팅 박응구 대표는“타 산업분야처럼 승강기도 국책연구소 등을 활용해 인력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을 중견회사로 키울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소기업 뭉쳐야 산다
그렇다고 한국 승강기시장이 캄캄한 것만은 아니다. 경남 거창군에 우리나라 최초로 집적화산업단지인 승강기밸리가 완공을 앞두고 있고, 승강기 전문교육을 받은 승강기대학교 졸업생이 기업에 수혈되면서 시장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현재 승강기밸리는 1차 기업입주를 마친 상태다. 지난 7월 거창승강기밸리를 상징하는 테스트타워가 완공을 앞두고 있다. 지상높이 100미터로 공용 테스트 타워로는 가장 높다고 한다. 앞으로 23개 기업이 입주한 거창승강기밸리에서 생산되는 승강기 자유낙하와 부품에 대한 안전성을 시험하는 등 폭넓은 쓰임새가 예상된다.
올해 거창승강기밸리 기업 공동브랜드인‘거창승강기주식회사’가 산고 끝에 문을 열었다. 거창승강기밸리에 소속된 기업의 다양한 기술력이 융합되면 경쟁력 있는 제품생산도 기대된다. 우리 속담에“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말이 있듯이 중소기업이 하나로 뭉치면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도 승강기 산업육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산업통산부는 지난 8월 침체된 승강기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100억 원 규모의 승강기산업 구조 및 기술고도화 예산안을 기획재정부에 제출했다. 예산안이 차질 없이 진행될 경우 2014년부터 매년 30억 원 규모의 공공자금과 민간자본이 승강기업계에 투입된다. 현재로선 거창승강기밸리에 한정된 예산안이지만 내수시장을 활성화는 데 있어 작으나마 힘이 될 전망이다.
승강기 전문 기술인재 양성소인 세계 첫‘승강기인재개발원’도 인력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업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승강기인재개발원은 중소기업이면 돈을 들이지 않고도 양질의 기술교육을 받을 수 있다. 올해 11월까지 약 1,200명이 교육을 이수했다. 승안원은 앞으로 우수한 전문 강사진과 교육콘텐츠로 한국 승강기 산업이 성장하는데 기여한다는 방침이다.
업계 위기를 인식한 승강기안전관리원도 지원을 조금씩 강화되는 추세다. 승안원은 올해 러시아와 독일전시회에 참여한 기업을 지원했다. 각종 전시일정관리부터 기업홍보, 해외바이어 상담주도 등으로 약 300억 원 규모의 수출 상담을 견인했다. 승안원은 앞으로 해외 유망전시회에 중소기업 참여를 확대하고, 다양한 지원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아울러 승안원이 주관하는 한국승강기안전엑스포를 국제수준으로 키워 우리 기업들이 안방에서도 해외바이어를 만나고 제품을 홍보할 수 있도록 가꿀 예정이다. 내년이면 세 번째로 개최되는‘2014 한국승강기안전엑스포’는 10월 28일부터 31일까지 나흘간 서울 코엑스 A홀에서 개최된다. 이미 러시아 승강기연합회(NLU)는 물론 유럽승강기기술인협회(VFA), 중국엘리베이터협회(CEA) 등과 엑스포 협력체계가 갖춰져 내년 5월에 개최되는 중국 광저우승강기엑스포 참여하는 한국기업은 부스 임대비 할인 등의 직접적인 혜택을 받을 전망이다. 승안원의 이 같은 노력은 제도와 산업 등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공창석 승안원장의 경영철학이 투영됐다.
현재 상황으로 볼 때 한국 승강기 시장이 하루아침에 좋아지긴 힘들다. 그러나 한국 기업인 특유의 배짱과 도전정신으로 해외시장을 지속적으로 두들겨 나간다면 새로운 희망도 가능하다. 위기의 반대말은 기회라는 말이 있다. 힘들수록 기업들이 협력하고,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나서 해법을 모색한다면 지금의 위기는 기회로 전환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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