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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의 늦가을을 만나러 가다

문화유산이 살아 숨쉬는 곳

구미의 늦가을을 만나러 가다

 

구미는 우리나라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공업도시다. 공업도시가 으레 그렇듯이 이방인들에게는 딱딱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구미 시가지를 찬찬히 돌아다니다 보면 딱딱함보다는 부드러운 느낌으로 먼저 다가온다. 왜 그럴까? 아마도 시가지를 둘러싸고 있는 금오산이란 걸출한 명산 때문이 아닐까? 금오산이 내뿜는 기운을 맞으러 구미로 떠나보자.


글 김초록(여행작가) │ 사진제공 구미시청 홍보담당관실

 

 

금오산의 단애.

 

 

travel tip 지역번호 054
가는길 경부고속도로 구미 나들목이나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 나들목으로 나온다. 강남(동서울)터미널에서 30분 간격으로 구미행 고속버스 운행. 금오산은 구미 나들목에서 시청 방면으로 가다 금오산 이정표를 따라간다. 박정희 대통령 생가는 사곡동사무소 인근(금오산에서 5분 거리)에 있다. 이정표가 잘 돼 있다. 동락원은 구미대교를 건너자마자 왼쪽에 있으며 여기서 67번국도를 타고 해평면 소재지로 가면 철새도래지를 비롯해 쌍암고택, 도리사, 의구총, 일선리문화재마을 등지로 갈 수 있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 나들목으로 나와 죽장사 5층석탑을 둘러본 뒤 일선리문화재마을, 의구총, 도리사, 해평철새도래지 순으로 돌아보는 방법도 있다.
맛집 시내에 흩어져 있는 한정식집을 권한다. 경복궁(송선로514, 443-7776), 금오산안가(공원로316, 451-3707), 초대(신시로16길, 471-0011), 소담뜰(송정대로12, 457-8644) 등
숙박 구미시내에 호텔금오산(450-4000), 구미센츄리호텔(478-0100), 에이스모텔(451-4488), 호텔BS(462-6000) 등이 있다. 옥성면 주아리에 있는 옥성자연휴양림(481-4052)도 좋다.

 

 

 

금오산의 신성한 정기

 

금오산(金烏山)이라는 이름은 ‘태양 속에 산다는 세 발 달린 황금빛 까마귀(금오)가 저녁노을 속에 금빛 날개를 펼치며 비상하는 모습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영남8경 또는 경북8경의 하나로, 1970년 6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구미 사람들에게 이 산은 편안한 쉼터이자 영혼의 안식처이다. 하늘로 뻗어 올라간 기암괴석과 여기저기 숨어 있는 폭포와 굴은 예사롭지 않다. 금오산은 알록달록 단풍빛이 드는 이맘 때쯤에 찾으면 가장 좋은데, 주말이면 전국에서 몰려든 등산객들로 제법 시끌벅적해진다.

 

금오산 대혜폭포가 시원스럽다.

 

 

훤칠한 금오산 전경.


본격적인 산행에 나서기 전 한 군데 들러볼 곳이 있다. 야은(冶隱) 길재(1353-1419) 선생의 충절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지은 채미정(採薇亭)이다. 채미(採薇)란 중국 주나라 때 다른 왕조를 섬기지 않으려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고 살았다는 백이숙제의 고사에서 따온 말이다.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멋스러운 이 정자는 1768년(영조 43년)에 지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로 지붕을 떠받친 열여섯 개의 기둥이 안정감을 준다. 정자 옆에는 경모각, 구인재 등 선생을 기리는 유적이 세워져 있다.


금오산(해발 976미터)은 만만치 않은 높이다. 가볍게 생각하고 올랐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등산화와 간식거리는 필수. 메타세쿼이아들이 늘어선 초입은 완만한 산책길이다.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 향기를 맡으며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연인들도 많이 보인다. 그네들은 산이 목적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사랑을 더 깊이 쌓을까를 고심하는 것 같다. 이 산책길(흙길)은 아늑하고 호젓한 데다 경치도 그만이어서 늦가을 정취를 만끽하고 추억과 낭만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등산로는 크게 네 군데로

■ 공원주차장-금오산성-대혜폭포-내성-정상(왕복 기준 4시간),
■ 공원주차장-금오산성-대혜폭포-성안-정상(4시간 30분),
■ 공원주차장-법성사-정상(4시간),
■ 공원주차장-자연환경연수원-칼다봉-성안-정상(5시간)

코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발걸음이 무겁거나 시간에 쫓긴다면 공원 관리사무소에서 대혜폭포까지는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걸어서 오르면 30분 거리지만 케이블카로는 단 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대혜폭포에서 금오산성 내성을 지나 정상까지는 어른 걸음으로 1시간 20분 남짓이면 오를 수 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정상 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기암절벽을 두르고 들어앉은 해운사가 나타난다. 근세에 지은 절이라 마음을 움직이는 느낌은 덜하지만 주변 경관이 빼어나 다리쉼을 하면서 금오산의 정기를 받기 좋은 곳이다.


해운사에서 다시 길을 재촉한다. 쇠 난간을 잡고 얼마나 올랐을까? 커다란 굴이 보인다. 야은 길재 선생이 수도처로 삼았다는 도선굴이다. 굴 난간에 몸을 기대고 밑을 바라보니 그야말로 장관이다. 물감을 뿌려놓은 듯한 산숲이 가슴으로 와락 달려드는데 햇살이 눈부시다. 맑은 공기를 흠뻑 들이마신다. 새소리가 청아하다.도선굴을 보고 다시 돌아 나오면 대혜폭포로 가는 길이 나온다. 바위절벽을 타고 쏟아져 내리는 30여 미터의 폭포수가 장관이다. 떨어지는 물소리가 산을 울린다고 해서 명금폭포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름(대혜)에서 보듯 등산객들에게 큰 은혜를 베풀고 있다. 물이 떨어지면서 생긴 연못과 주변 경관이 하도 아름다워 소금강이란 별칭도 있다.


대혜폭포에서 길은 사뭇 가파르게 이어진다. 완만한 지형이 갑자기 급경사로 바뀌면서 발길을 주춤거리게 한다. 쇠줄로 이어놓은 난간이 있지만 워낙 가팔라서 숨을 몰아쉴 수밖에 없다. 오죽했으면 ‘할딱고개’란 별칭이 있을까만 산을 타는 재미도 쏠쏠해서 힘들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역사의 향기

 

금오산에서 10분 거리에는 박정희 대통령 생가가 있다.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기틀을 다져놓았던 박 전 대통령이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사랑채, 분향소, 관리사, 주차장 등으로 꾸며진 생
가에는 박 전 대통령이 어린 시절 썼던 책상, 책꽂이, 호롱불 등이 남아 있고 마당 한쪽에는 1929년에 모친과 같이 심었다는 감나무가 서 있다. 생가를 둘러보고 구미국가산업단지가 있는 공단동을 지나 구미대교를 건너면 조선시대의 문신 장현광(張顯光)이 제자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던 동락서원이 있다. 장현광은 인조 때의 학자로 이황 등과 함께 성리학의 기반을 닦아놓은 분이다. 저서로 <여헌집(旅軒集)>과 <성리설(性理說)> 등이 있다.

 

동락서원에서 67번국도를 타고 해평면 소재지로 간다. 낙동강 줄기를 끼고 있는 해평면은 구미에서도 경치가 가장 아름답다. 이곳은 철새 도래지이기도 하다. 낙동강물이 잠시 쉬어가는, 4만여 평에 달하는 넓은 습지가 펼쳐져 있다. 해마다 겨울이면 흑두루미, 재두루미 같은 희귀철새를 비롯해 큰 기러기, 쇠기러기, 민물 도요새 등 철새들이 찾아든다.대구 경북 관내에서 하나밖에 없는 철새도래지이지만 개발에 따른 주변 환경이 열악해 갈수록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곳곳에 편의시설과 산책로, 자전거길을 만들어놓아 가을 한때를 보내기 좋다.


철새도래지가 있는 해평면 소재지에서 빼놓지 말고 봐야 할 것이 있다. 쌍암고택(雙岩古宅)과 북애고택(北厓古宅)이 그것. 전자는 검재 최수지의 후손인 조선시대 실학자 최광익 선생이 지은 집으로 둘째 아들이 살던 곳이다. 집 앞에 큰 바위가 두 개 있어 쌍암고택(雙岩古宅)이라고 한다. 쌍암고택과 마주보고 있는 북애고택은 훗날 형(둘째 아들)이 아우한테 지어준 집으로 북쪽 낮은 언덕 위에 있다고 해서 북애(北厓)란 이름이 붙었다.

 

 

아도화상이 세운 유서 깊은 절집

 

해평면 소재지를 벗어나 낙동강 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도리사를 알리는 입간판을 보게 된다. 맹산 태조봉이 품고 있는 도리사는 신라 19대 눌지왕 때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 세운 절이다. 아도화상이 불교 전파를 위해 이곳에 왔다가 때 이른 겨울에 복숭아(桃)꽃과 배(李)꽃이 핀 것을 보고 도리사(桃李寺)란 이름을 얻었다. 도리사는 분위기가 독특한 절이다. 웅장한 멋은 덜하지만 누각 하나하나가 아름답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과 세존사리탑, 모전석탑 계열의 도리사석탑 등 눈길을 끄는 유물이 여럿 있다. 2층 높이의 설선당(說禪堂)과 보은전(報恩殿)도 볼만하고 무엇보다 법당 언덕에서 바라보는 주변 경치가 각별이다. 도리사를 품고 있는 냉산은 울창한 수림에다 산악레포츠공원까지 갖추고 있어 가족 산행지로 좋다.

<산행 코스: 도리사1주차장→산악레포츠공원→태조정(팔각정)→주능선→도리사 삼거리→정상→도리사삼거리→도리사→1주차장>

 

 

아도화상이 세운 도리사.

도리사에서 빠져나와 송덕휴게소 삼거리에서 서쪽 길로 10분쯤 가면 낙산리 고분군이 있다. 원삼국시대부터 통일 삼국까지 목곽묘, 옹관묘, 수혈식 돌방무덤 등 다양한 형태의 무덤들을 볼 수 있는데 선산과 주변 지역의 지배층 무덤으로 추정된다. 낙산리 고분군에서 동남쪽, 낙산1리의 마을 안 논 가운데에는 보물로 지정된 낙산리 삼층석탑이 서 있다. 8세기경 신라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는데 일부 망가지긴 했지만 비교적 온전한 모습이다. 인근 도로가에 있는 의구총도 볼만하다. 술에 취한 주인을 구한 개의 무덤으로 죽은 개를 기리기 위해 관을 갖추어 매장하였다.


의구총에서 서쪽으로 좀 더 올라가면 고택들이 늘어선 일선리 문화재 마을이 나온다. 돌담과 고택이 어우러진 마을은 80년대 안동땅 임동면 수곡, 박곡, 무실마을에 흩어져 살던 전주 류씨들이 임하댐 건설로 고향이 수몰되자 이곳으로 이주해왔다. 주민들이 이주하면서 문화재도 함께 옮겨왔는데 전주 류씨 류성의 아우 류원이 분가하여 지은 수남위종택을 비롯해 숙종 때 학자인 류승현 선생의 종택인 용와종택, 만령 류익휘 선생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만령 초당 등 조선 중후기 양식의 가옥들이 가지런히 배치돼 있다. 일선리 마을에서 일선교를 건너 선산 나들목(중부내륙고속도로) 쪽으로 가면 죽장사 5층석탑을 만날 수 있다. 죽장사 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높이가 1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전탑(塼塔:벽돌로 쌓아올린 탑)으로 낙산리 3층 석탑과 닮은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