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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핫'한 이 남자, 배우 유아인

요즘 '핫'한 이 남자

배우 유 아 인

 

모든 배우가 작품마다 새로운 가면을 쓰고 벗지만, 유아인은 그 가면을 오롯이 자기 색으로 물들인다. ‘유아인’이 지나간 자리엔 ‘유아인’이 남는다. 흥미로운 건 유아인이 새로운 가면을 쓰고 나타난 순간, 그전 얼굴은 쉽게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질풍노도의 청소년으로 분했던 「완득이」, 엄마 바라기 「깡철이」, 안하무인 재벌 3세 「베테랑」, 조선 시대 비운의 왕세자 「사도」까지 그가 작품 안에 새긴 인장은 선명하다.

글 김지혜(자유기고가)

 

 

 

「사도」는 유아인의 마음을 움직인 작품이다

 

그는 “영조와 사도의 관계와 뒤주 사건을 정치, 당파 등 여러 가지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지만 우리 영화는 결국 인간으로 접근하고 해석한 게 아주 좋았다”고 덧붙였다. “그게 왜 특별했냐면 궁중에 있는 인물, 권좌에 있는 인물은 인간이 아니고 그 자리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고독하고 외로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사도 역시 후계자라는 무게와 그 주변을 둘러싼 권력 때문에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을 인간적으로 비춘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은 정통 사극에 가까웠다는 점이 큰 매력으로 작용했다. “이런 정통 사극, 우직한 돌직구 사극이 있었나 싶었다. 사실 사극에 르네상스가 찾아오고 난 이후부터는 멋부린 이야기 구조에만 치중한 사극이 많았다. 그런데 「사도」는 배우인 나에게도 진짜 역사극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그 점에서 이준익 감독에게 감사하다”

 

 

사도를 연기하며,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다

 

「사도」는 정치적 배경과 해석을 배제하고 본다면 불통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다. 지금으로부터 250년 전, 그것도 조선 시대 왕가에서 일어난 이 세대 간 불화는 오늘날에 대입해 봐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유아인 역시 사도를 연기하며 자신의 부자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유아인은 “아버지랑 사이가 안 좋았다”며 “아마 아버지도 아실 것이다”라고 운을 뗐다. “어릴 때 난 세상에 불만투성이었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나 그랬다. 그런데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며 아버지에 대한 이해가 생기더라. 특히 「사도」를 찍으면서 아버지를 많이 이해하게 됐다. 영조가 왕이긴 하지만, 완벽한 사람은 아니지 않나. 내 아버지나 아들인 나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며 든 한 가지 궁금증은 ‘과연 사도는 늦게나마 반성과 후회의 마음을 가졌을까’이다. “뒤주 안에 갇히는 경험을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저 난 연기로 재연했을 뿐이다. 사도를 연기한 내 생각? 아마도 그는 반성이나 후회는 안했을 것 같다. 그저 빨리 죽기를 원했을 것 같다. 만약에 나라면? 혀를 깨물었을 것 같다”

 

 

 

김윤석(「완득이」), 황정민(「베테랑」)에 이어 이번엔 송강호(「사도」)였다

 

누군가는 산 넘어 산이라고 할 것이다. 이제 갓 서른이 된 젊은 배우가 관록과 노련함으로 무장한 대배우와 호흡을 맞춘다는 것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엄청난 배우들과 호흡을 맞춘 것은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 무형의 영향력에 대해 유아인은 “내가 송강호, 황정민 선배랑 연기한다고 해서 그분들의 연기력을 따라갈 수 있겠어요?”라고 반문했다. 대신 “숲을 바라보는 넓은 시각, 성실한 태도 등 연기력 이상의 것을 많이 배웠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서는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것은 유아인이 오랫동안 고수해온 스타일 때문이었다. 그것을 ‘현장에서 자신을 왕따를 만드는 습성’이라고 표현했다. “늘 어려서부터 선배들이랑 많은 작품을 해왔다. 그런데 붙임성이 없다고 해야 하나. 현장에서는 막 섞이기보다는 좀 떨어져 있는 편이다. 송강호 선배와도 첫 촬영 때를 제외하고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없다. 어떻게 보면 아마추어틱한데 막 섞이며 친해지는 게 아니라 떨어져 있을 땐 떨어져 있다가 촬영에 들어갈 때 집중하려는 편이다. 연기하는 순간에 선후배는 없다. 사적인 감정이 들어가는 건 불순물이니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렸던 지난 10월 6일, 서른 번째 생일을 맞은 유아인

 

‘천만 배우’, ‘아인시대’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그냥 즐기고 싶다고. 유아인은 “물론 부담 돼서 지레 겁이 날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상적으로 바라는 건 좋은 일이 있을 때 신나게 즐기고 잊어버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어릴 땐 그걸 즐기지 못했다. 이게 날아가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 같은 것이 있었다. 이건 날아가 버리는 거고, 영원한 게 아니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순간에 흠뻑 취할 수 없다는 거지. 그런데 뭐… 어깨에 벽돌 좀 올렸다 한들 다시 내려오면 되는 거 아니에요? 아등바등 겸양 떠는 것보다는 지금 이 순간을 시원하게 즐기고… 이런 스포트라이트가 내 미래를 만드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면 전략적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나중에 꼰대가 되어서 ‘왕년에 이렇게 좋은 날이 있었다’고 회상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