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들려주고 싶은 세상의 지혜
동화 '엘리베이터 비밀'의 양승숙 작가
건물을 오르내리며 수많은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엘리베이터. 매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엘리베이터가 만약 살아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런 상상과 함께 만들어진 동화가 바로 ‘엘리베이터의 비밀’이다. 동화 ‘사물의 비밀’ 시리즈 중 한 편인 ‘엘리베이터의 비밀’을 통해 아이가 더 큰 세계를 꿈 꿔볼 수 있기를 희망하는 양승숙 작가를 만나본다.
글 편집부
엘리베이터는 타임머신이 아니었을까?
동화 속 주인공은 10년째 한 아파트의 1층에서 21층을 쉴새 없이 오르내리며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엘리베이터. 그는 자신의 눈인 CCTV를 통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성장과 변화를 지켜보며 지낸다. 매일 같은 시간 엘리베이터를 타던 5층 할머니가 어느 날부터인가 보이지 않기도 하고, 젊은 부부 사이의 아기는 어느덧 커서 유치원 가방을 매고 조그만 손으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때론 개구쟁이 아이들의 장난에 엘리베이터는 곤란을 겪을 때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엘리베이터는 자신의 기억 속 어딘가에서 특별한 장면
들을 생각해 낸다. 그것은 1층에서 21층 사이만을 오가던 것이 아닌 ‘과거’로도, ‘미래’로도 갈 수 있었던 자신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타임머신이라고 불러온 것이 혹시 자신은 아닐까 엘리베이터는 생각한다.
“이 책은 희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엘리베이터는 지금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사물이죠. 하지만 생각해보면 잭크와 콩나무의 신기한 콩나무, 선녀와 나무꾼에서 나오는 하늘과 땅을 잇는 두레박처럼 땅 위 높은 공간으로 갈 수 있는 신기한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타는 사람도 내리는 사람도, 심지어 10년 동안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던 엘리베이터조차 자신의 일에 길들여졌지만 동화 속에서 엘리베이터는 문득 자신의 특별함을 깨닫게 되고 꿈, 희망을 품게 되지요.”
엄마가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세상의 모든 것
‘사물의 비밀’은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물건 또는 추상적 단어까지도 아이가 쉽게 이해하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의인화를 통해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 양승숙 작가의 시리즈 동화이다. 사실 양승숙 작가가 사물의 비밀 시리즈를 기획하여 집필하게 된 데는 작가의 아픈 개인사가 숨겨져 있다. 양승숙 작가는 결혼 10년 만에 뒤늦게 아이를 갖게 되었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그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소중한 아이였고 그 만큼 엄마로서의 사랑도 넘치도록 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가 4살쯤 되었을 무렵 그는 암이라는 뜻하지 않은 시련을 맞이하게 되었고 수술과 항암치료, 방사선치료를 하며 누워서 생활해야 했다. 아이가 한참 세상에 호기심을 가질 때였다. 아이는 온갖 사물에 대해 물어 왔다. 게다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책에 관심을 갖게 되어 자주 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을 기력 조차 없었지만 아이에게 눈에 보이는 의자며 책상, 세탁기, 냉장고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땐 몸이 너무 아파 아이와 오랫동안 함께 있지 못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엄마가 없을 때 아이에게 엄마를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절실했습니다. 살아가면서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엄마가 절실히 필요할 때, 그 때 엄마가 없더라도 책을 통해 엄마의 답을 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래서 ‘사물의 비밀’ 이야기에
는 유독 절망하지 않기, 일단 도전해보기 등 희망의 이야기가 많지요.”
상상 속에서 만난 엘리베이터의 비밀
‘사물의 비밀’ 100여 개의 이야기 중 서른 여섯 번째로 출간된 ‘엘리베이터의 비밀’은 작가의 실제 삶의 터전이 무대였다. 양 작가는 올해 초까지 지은 지 10년쯤 된 36층 주상복합아파트의 31층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 높은 곳에서 순식간에 땅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침마다 아이와 어린이집에 갔다. 매일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면서 엘리베이터에 너무나 익숙해져 마치 계단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가 꼭대기 층부터 단 한 층도 건너 뛰지 않고 모든 층을 다 거쳐가는 날이 있었어요. 대부분 1~2번, 많게는 7~8번도 정도 정차하기는 하지만 이날은 이상하게도 모든 층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어요. 층마다 다른 사람들이 내리고 또 오르고…, 그것을 바라보며 같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다른 사람들의 삶을 잠시 생각하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지요.”
아침마다 운동을 가시던 이웃집 할머니, 작가의 아이처럼 세 살 때 이사와 초등학생이 된 아이, 매일 출근하는 총각 등 자신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이웃들을 엘리베이터의 입장에서 바라봤다.
사물의 의인화를 통한 눈높이 이야기
사물의 비밀은 모든 사물을 의인화하여 쓰임새 보다는 그 사물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엘리베이터의 비밀’에서도 CCTV는 엘리베이터의 눈이고 층버튼은 엘리베이터의 손톱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장난하면 엘리베이터가 아플 수 있다는 것도 의인화를 통해 아이의 눈높이로 설명하고 있다.
“처음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로 이사 갔을 때 아이가 아마 3~4살쯤이었을 거예요. 그런데 엘리베이터를 타서 다른 층 버튼을 누르면 큰 일이 나는 줄 알더라고요. 아마도 어린이집 선생님께 배운 모양인데 왜 큰 일이 나는지는 모르고 있더군요. 아이의 시각에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층마다 누르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죠.”
그렇게 말하고 한 번은 아이와 엘리베이터에 단 둘이 탄 날 모든 층을 누르도록 했다. 정말 모든 층의 버튼을 누르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 주고 싶었다. 아이는 처음 한 두 층은 신기해했지만 곧 지루해했고 5~6층이 지난 후에는 아이 스스로 각 층 누름을 취소하여 원래대로 해놓았다. 그 날 일을 통해 아이 스스로 다른 곳을 누르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고 엘리베이터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 않게 되었다.
“아이들이 엘리베이터를 탈 때마다 자신의 꿈에 대해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위아래로만 움직이는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 바다와 기차가 지나다니는 들판으로 갈 수 있는 타임머신을 꿈꾸는 동화 속 엘리베이
터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작가가 꿈꾸는 엘리베이터 버튼은 어떤 층일까?
“’사물의 비밀’을 내 아이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중국, 남미, 독일, 방글라데시 등 전세계 아이들이 읽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순간으로 가는 거예요. 이솝의 이야기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오랫동안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사물의 비밀’ 이야기가 읽혀졌으면 좋겠어요. 사물의 비밀을 통해 아이들이 삶의 지혜와 방향을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예요.”
엘리베이터, 꿈과 희망을 만나는 공간
1987년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양승숙 작가는 졸업 후 기자생활을 해오며 창작에 대한 꿈을 키웠다. 2006년 출판사로 자리를 옮기며 기획재정부 ‘세계지도 FTA로 다시 그리다’, 농림수산 식품부 ‘남과 다른 1% 나의 농업노트’, 지식경제부 발행 ‘콜롬부스도 발견하지 못한 해외 10대 시장’, ‘멀리 보는 기업이 선택한 지방 투자 이야기’ 등의 정부출판물 스토리텔러, 퍼블리싱 디렉터로 활동했다.
“기자로 일하면서도 창작에 대한 아쉬움이 커서 대학원에 진학하여 소설을 공부했어요. 하지만 선뜻 작품을 쓰지는 못하겠더라고요. 그러다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동화를 쓰게 되었어요. 동화책을 쓰면서 창작에 대한 그 모든 갈증이 풀리는 것 같더라고요.”
초등학교 때 톨스토이를 접하면서 늘 창작자가 되기를 갈망했다는 양승숙 작가. 어릴 적 꿈에 대한 강렬한 희망을 품었던 자신의 모습처럼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매 순간 어느 곳에서도 꿈과 희망을 접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엘리베이터의 비밀’을 탄생시켰다.
“자라면서 저는 늘 몸이 약해 항상 지쳐있었어요. 그러다 자동차를 가지게 되면서 나에게 그 어느 때보다 큰 힘이 생겼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걸어서 2시간 걸릴 거리를 10분이면 가고, 무거운 짐도 단숨에 옮기고, 비와 바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바깥 일을 할 수 있으니 말이죠. 차가 내게 이러한 힘을 가져다 준 것처럼 엘리베이터도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이동의 자유를 주는 것 같아요.”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엘리베이터 앞에 줄을 선 많은 어르신들을 보게 된다. 그분들이 지하철을 타고 맘껏 이동할 수 있는 것도 어쩌면 엘리베이터 덕분이 아닐까 생각했다는 양 작가는 사물의 입장에서 접근하고 이를 이해하다 보면 우리 사회에 생겨날 수 있는 여러 안전사고도막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는 ‘사물의 비밀’ 시리즈로 엘리베이터의 비밀, 세탁소 드라이클리너의 비밀 등의 사물뿐만 아니라 대나무, 숲 등의 자연물, 기린, 아기북극곰 등의 동물, 택배상자, 운동화, 숫자 ‘2’ 등 우리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것들을 소재로 이야기를 쓰고 있다. 현재까지 40여 종이 출간되어 나와 있으며 집필 중인 것까지 고려해 108권의 이야기를 다 쓰고 나면 소설에 도전하고 싶다는 양승숙 작가.
“읽히는 글을 쓰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읽히고 읽은 누군가가 한 순간이라도 공감하면 그보다 더 좋은 게 없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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