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템포 느리게 가는 여유
남해에서의 여름 休가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남해는 삼천포와 창선도를 잇는 다리가 완공된 후 여행이 훨씬 편리해졌다. 삼천포에서 창선대교를 건너면 1024번 지방도로가 이어진다. 이 길은 창선도의 서부 바닷가를 우회하는 해안길로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며 달리는 재미가 그만이다. 그렇게 느릿느릿 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단항-서대-광천-사포마을을 차례로 지나 신흥리에 이르면 갯벌생태체험, 선상어업체험, 유자수확 등 각종 체험이 기다리는 해바리마을이 나온다. 일몰 후에는 썰물을 이용해 횃불을 들고 갯벌에 나가 낚지, 게, 조개를 잡는 홰바리체험을 즐기는 등 여름을 기다려 온 이들을 위한 종합선물세트 같은 이곳, 남해로 떠나본다.
■ 글 / 김초록 (여행작가) 사진제공 / 남해군청 홍보실
Travel Tip_
가는길: 대전 통영 고속도로 진주 분기점-남해고속도로(순천 방면) 하동 나들목-19번 국도(남해 방면)-남해대교-남해. 남해고속도로 사천 나들목-사천-창선·삼천포대교-지족리-앵강고개(19번국도)-1024번 지방도로-월포 두곡 해수욕장-석교마을-다랭이마을. 서울, 부산, 마산, 창원, 진주, 사천, 순천, 광양 등지에서 남해행 고속버스와 직행버스가 다닌다. 남해읍에서 상주해수욕장을 경유, 미조, 금산으로 가는 완행버스가 30분 간격으로 있다.
지족해협에서만 볼 수 있는 원시어업
신흥마을 앞으로 보이는 창선교를 건넌다. 해풍이 시원한 창선교 위에서는 지족해협 일대의 수려한 풍광이 한눈에 잡힌다. 특히 창선교 아래 지족해협에는 원시어업인 죽방렴이 설치돼 있다. 죽방렴은 길이 10m 정도의 참나무 말뚝을 부채꼴 모양으로 갯벌에 박고 발을 둘러 고기를 잡는 어업 방식이다. 나무말뚝을 쳐놓아 고기들이 한번 들어오면 빠져나갈 수 없도록 했다. 일종의 ‘나무그물’인 셈이다. 3월 중순부터 11월까지 고기를 잡는데, 물이 빠진 시간에 고기를 건져내기 때문에 한 달에 보름 정도 밖에 일을 못한다.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는 비늘이 상하지 않아 일반 멸치보다 비싼 값에 팔린다.
볼거리 다채로운 해안마을
창선교를 건너면 길은 좌우로 이어진다. 미조항으로 이어지는 이 해안도로는 상쾌한 바닷바람을 마시며 드라이브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중간 중간에서 만나는 볼거리들은 여행길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 독일식 주택들이 옹기종기 들어선 독일마을에 들러본다. 1960년대 암울하고 어렵던 시대에 한국을 떠나 독일로 건너간 사람들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정착한 곳이다. 푸른 남해가 아른거리는 마을에는 현재 40여 가구의 독일 교포가 생활하고 있으며 가족 단위 관광객을 위한 민박(http://www.germanvillage.co.kr)을 운영하고 있다.
독일마을 바로 위에는 사철 다양한 꽃을 볼 수 있는 원예예술촌이 있다. 20여명의 원예인들이 의기투합해 집과 정원을 특색 있게 꾸며놓은 아름다운 마을이다. 갖가지 꽃들과 집이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산책길은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 두 곳을 보고 아래로 내려오면 남해안 일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풍림이 다가선다. 물건방조어부림(천연기념물 제150호)이다. 이곳은 보기 드문 ‘나무숲의 보고’이다. 숲 안에는 말채나무, 땡나무, 푸조나무, 상수리나무, 참느릅나무, 보리수나무, 동백나무, 윤노리나무, 광대싸리나무, 가마귀밥여름나무, 누리장나무, 화살나무, 댕댕이덩굴, 개머루 등 이름도 생소한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어 그 자체가 자연 학습장이다. 남해 편백자연휴양림도 놓치기 아까운 명소다.
이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물건방조어부림에서 왔던 길로 되돌아가 동천 3거리에서 내산 쪽으로 접어들어야 한다. 편백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 향기를 맡으며 호젓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이다. 편백나무는 항균 면역 기능과 함께 아토피 피부 치료에 좋다고 한다. 전망대에 오르면 한려수도의 크고 작은 섬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인근에 있는 나비생태공원과 바람흔적미술관, 내산 저수지에도 들러보자. 저마다 자연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곳들이다. 특히 저수지를 끼고 있는 내산마을엔 들꽃이 지천이다. 수세미, 환타치믹스, 혼합꽃박, 여주 등 덩굴식물이 드리워진 터널이 그윽하다.
수채화 같은 미조항
미조항은 야트막한 언덕을 사이에 두고 북항과 남항으로 나뉘어 있다. 시간이 맞는다면 남해군수협위판장(남항 끄트머리 방파제 앞)에서 아침 7시부터 시작하는 활어 경매를 꼭 보도록 하자. 어부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이다. 경매는 당일 물량에 따라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정도 진행된다.
낭만 넘실대는 해변
미조항에서 금산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송정해변과 상주해변이 차례로 나타난다. 맑디맑은 바닷물과 부드러운 백사장, 그리고 솔숲이 어우러져 호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금산이 호위하듯 감싸고 있는 상주 은모래해변은 아름드리 해송이 긴 해안선을 따라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다. 백사장의 길이가 2㎞나 되고 솔이 우거져 있어 가족끼리 낭만에 젖어볼 수 있다. 오랜 세월 조개껍질이 잘게 부서져 만들어진 곱디고운 모래사장을 맨발 걸음으로 걷는 기분이 상쾌하다.
요즘 상주와 송정 앞바다는 여름 레포츠의 하나인 카약 타기가 한창이다. 카약은 인근 두모마을에서 1시간 정도의 교육을 받으면 탈 수 있는데 바다를 헤치고 나아가는 짜릿한 경험은 잊지 못할 추억거리다.
바다를 굽어보는 금산 38경
금산은 남해의 얼굴이다. 섬과 바다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명산으로 산꼭대기에는 우리나라 3대 기도 도량으로 꼽히는 보리암이 있다. 또한 이 산이 간직한 38경은 등산객들의 넋을 빼앗는다. 망대, 상사암, 대장봉, 사자암, 향로봉, 흔들바위, 쌍홍문, 형리암, 화엄봉, 일월봉, 삼불암, 촉대봉, 농주암, 음성굴 따위의 기기묘묘한 돌덩어리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다도해는 진경산수화를 보는 듯 하고 산허리를 휘감는 아침 운무는 신비스럽기조차 하다. 보리암에서 맞는 일출은 금산 38경 중 백미라 할 수 있다. 산 중턱까지 차량이 올라갈 수 있어 정상까지 20분만 걸으면 된다.
보리암에서 내려오면 좌측으로 오목하게 돌아나간 앵강만이 펼쳐진다. 산과 마을이 감싸고 있는 앵강만은 웅장하고 평화롭다. 앵강만을 휘돌아가는 앵강다숲길을 걸어본다. 숲과 바다가 연주하는 교향악이 내내 귓전을 맴돈다. 참으로 아름다워서 다만 옷깃 여밀 뿐이다. 자란대는 앵강만의 바다가 문득 가슴에 안기는 순간, 저만큼 섬 하나가 바라보인다. 서포 김만중이 유배당했던 노도다. 김만중은 이 섬에서 ‘사씨남정기’와 ‘서포만필’ 등을 집필했다. 노도에는 김만중이 유배생활 동안 머물렀던 초옥터와 가묘터가 남아 있다. 양아리 벽련마을에서 노도로 들어가는 배가 부정기적으로 운항한다.
앵강만을 끼고 조금 가면 용문사를 알리는 이정표를 보게 된다. 호구산(해발 627m) 자락에 숨어 있는 용문사는 남해에서 가장 오래된 절로 보리암처럼 번잡하지 않아 조용히 사색에 젖어볼 수 있다. 호랑이가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호구산 계곡물은 용이 승천했다는 용소로 흘러든다.
외국인도 찾는 체험마을
용문사에서 나와 해안길을 따라 더 가면 계단식 논을 구경할 수 있는 다랭이마을이 나온다. 다랭이는 다랑이의 사투리로, ‘밭 갈던 소가 한눈을 팔다 바다로 떨어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파르다. 설흘산(해발 481m)을 병풍처럼 두른 다랭이마을 앞으로는 쪽빛 남해가 넘실거린다.
마을 전망대에 오르면 다랑이 논이 보여주는 자연의 미학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다랭이마을에는 50여 가구 15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는데 체험마을로 지정되면서 사철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마을 한가운데는 들어가면 남자와 여자를 상징하는 ‘암수바위’가 나온다. 한쌍으로 된 바위는 옥동자를 낳게 해준다는 속설 때문인지 부부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마을 식당에서 막걸리, 파전 등을 맛볼 수 있으며 잘 꾸며진 민박집에서 하룻밤 머물 수 있다. 다랭이마을에서 평산항으로 이어지는 바래길(다랭이 지겟길)도 걸어 볼만하다. 이 길은 푸른 남해를 안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아름다운 길이다. 다랭이마을 홈페이지(http://darangyi.go2vil.org/) 참조.
다랭이 마을에서 항촌-선구-사촌-유구-평산마을을 차례로 지나면 힐튼 남해 스파리조트가 나온다. 여기서 길은 바다를 끼고 남해대교까지 뻗어있다. 어느 길로 가든 비산비야의 아름다운 풍광이 내내 펼쳐져 기분 좋은 드라이브를 약속해준다. 서면 소재지에 솟은 망운산(해발 786m)은 남해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정상(화방사가 기점)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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