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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

2년 공백 깨고
‘집으로 가는 길’로 돌아온
전 / 도 /

 

 

영화가 끝나자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화장기 없는 얼굴이지만 그대로 아름다웠다. 신작 ‘집으로 가는 길’을 내놓은 전도연은 2년의 공백이 무색할 정도로 뜨겁게 연기했다. 여배우 기근이란 말은 눈 녹듯 사라졌다. ‘칸의 여왕’은 이렇게 다시 우리 곁으로 왔다.

이정현(한국아이닷컴 기자)

 

힘든 촬영이었던 영화「집으로 가는 길」
영화「집으로 가는 길」(감독 방은진)에 출연한 배우 전도연을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모 카페에서 만났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발랄한 발걸음이 보기 좋다. 이어지는 인터뷰와 영화「협녀」촬영으로 고될 법하건만 미간을 살짝 찡그리는 생글생글한 미소는 여전하다. 많은 말을 한꺼번에 꺼내놓는 스타일은 아니다. 한마디 한마디 또박또박, 그러면서도 담고 싶은 내용을 알차게 담아 전한다. 발랄한 우아함이라는 표현이 있다면 전도연에게 참 잘 어울릴 것 같다.
“정말 힘든 촬영이었어요.”전도연은 신작인「집으로 가는 길」에 대해 이렇게 털어놨다. 그가 맡은 송정연 캐릭터는 남편 친구의 부탁으로 짐을 들었다 마약 운반범으로 오인돼 겪게 되는 2년간 옥살이를 한다. 말도 통하지 않는 지구 반대편 대서양, 마르티니크 섬에서 그는 오로지 가족을 향한 그리움 하나로 긴 세월을 버틴다.

 


복합적인 감정 표현하려 애써
전도연은 카메라 앞에 당당했다. 어느덧 세월의 흐름이 얼굴에 담겼지만 당당하다.
“얼굴이 예쁘게 나오든 못나게 나오던 상관 없다”는 그의 말.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마치 얼굴의 모든 근육이 움직이는 듯 보였죠. 현장에서 작은 모니터로 볼 때는 이렇게 초췌한지 몰랐어요. 현장에선 '이렇게 예뻐도 돼?'라고 했는데.(웃음) 만약 그 얼굴을 아름답게 봐주신다면 생김새가 아니라 송정연의 진심을 보신 게 아닐까요.”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 혼자 뚝 떨어진 건 극 중 캐릭터 송정연이나 전도연이나 마찬가지다. 프랑스와 한국, 도미니카 공화국을 오가는 일정은 빡빡했다. 이번 작품을 놓고 전도연은“뾰족한 돌로 신체의 한 곳만 두들겨 맞는 느낌”이라 했다. 마냥 슬픈 감정도 아니었다. 강한 여인이 담겨야 했다. 전도연은 캐릭터의 사투보다는 어떻게 성장하는가에 주목했다.
“송정연이 마냥 슬프기만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슬픔만 있었다면 더 많은 감정을 폭발시킬 수 있었겠죠. 하지만 정연 속에는 억울함과 그리움 등 복합적인 감정이 필요했어요. 극 중 '집으로 가고 싶습니다'라는 대사에 그걸 담으려 했죠. 저도 이렇게 울림이 클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간절함이랄까. 자다가도 중얼거릴 만큼 말하고 싶었던 것들을 띄엄띄엄 뱉어냈죠. 미묘한 떨림을 느끼셨나요?”

 

아이와 집, 촬영 모두 마치고 돌아오니 서먹한 느낌
2년 만에 은막에 복귀한 전도연은 속에 감췄던 에너지를「집으로 가는 길」에 쏟아냈다. “뜨거움이 내 연기의 원동력”이라고 말한 그는 마치 한풀이라도 하는 듯 열연했다. 2년간 가사와 육아에 집중했던 전도연은 탈출구가 필요했다.
“아이 엄마이기 때문에「집으로 가는 길」에 더 몰입할 수 있지 않았냐 하시는데 그렇지 않아요. 영화 찍을 땐 오히려 작품에 몰입하는 것 같아요. 촬영 내내 가족과 떨어져 있었지만 머릿속엔 송정연만 가득했던 것 같아요. 모든 촬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저를 바라보던 딸아이의 얼굴이 생각나요. 남의 집에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어찌나 서먹하던지.”(웃음)
목도한 카리브 해는 아름다웠다. 극 중 명장면인, 성폭행 위기에서 탈출해 바다를 바라보는 신에서 전도연은 악몽을 봤다. 그는 향후 10년 간 카리브 해에는 가지 못할 것 같다고 털어놨다. “저는 좀 독한 것 같아요. 어쩌면 생존 본능이 뛰어난 사람이죠. 만약 송정연 같은 상황에 부닥치더라도 희망을 놓을 것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 무섭고 끔찍해요. 누군가와 소통할 수 없다는 게 저를 떨게 했죠.”

 

교도소 장면, 실제 살인범·마약범과 함께 촬영
교도소 장면은 실제 도미니카 여성 교도소에서 진행됐다. 현지에서 섭외한 몇몇 배우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출연자들이 실제 수감 중인 여성 범법자였다. 전도연은 “대부분 죄명이 마약과 살인이라 겁났다”며“하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서로 응원하면서 즐겁게 진행되더라. 교도소 안이었지만 훈훈한 분위기가 나왔다”고 했다.
“저는 좀 독한 여자인 것 같아요.(웃음) 생존 본능이 뛰어나달까요? 만약 제가 위기에 처한다 하더라도 마지막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희망을 놓지는 않을 것 같아요. 저도 엄마니까요. 어쩌면 ‘집으로 가는 길’의 송정연과 저는 공통점이 많네요.”
전도연의 등장으로 여배우 기근을 겪던 영화계가 해갈됐다. 엄청난 존재감이다. 그 간의 공백을 아쉬워한 이는 전도연뿐만이 아니다. 배우 이병헌과 함께 영화「협녀」를 촬영 중인 그는“기회만 된다면 더 많은 작품에 출연하겠다”고 약속했다.
“칸에서 상을 받은 후 오히려 가까이하기 힘든 배우가 된 것 같아요. 저는 똑같은데.(웃음) 어떤 분들은 너무 작품성 있는 작품에만 출연하는 것이 아니냐 물으시는데 그렇지 않아요. 이야기만 재미있으면 어떤 장르건 출연하고 싶어요. 사실 저는 무엇이 상업적이고 아트에 가까운지 몰라요. 그저 관객분들이 영화를 보고 재미있어 하셨으면 하는 욕심뿐이에요. 연기가 좋다는 칭찬을 들으면 금상첨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