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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 생명까지 도둑질해간 기판 도둑

한 사람 생명까지 도둑질해간 기판 도둑

 

세상에서 가장 반갑지 않은 손님 중 하나가 남의 지갑이나 물건을 탐내는 밤손님들 아닐까? 아파트 관리 책임자들 또한 이들 때문에 아주 곤혹을 치른다. 공동주택에서는 한 시절 엘리베이터 기판 도둑들이 기승을 부려 이것 때문에 사표를 낸 관리소장들이 꽤 있었다. 한 번은 이 일로 결국 목숨까지 잃은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 글 / 장현식 (현 공동주택관리사/ 「머리철새의 울음소리」, 「머리철새 둥지를 틀다」 저자)

 

 

장물로 나온 기판 1대 150만원 이상 호가

우리 기억에 모든 승강기가 각 호기마다 옥상 기계실에 또는 카 상부에 필요한 숫자만큼 릴레이가 있어 이것으로 승강기가 운행되었는데 1997년부터인가 승강기 제조회사가 릴레이 방식에서 기판방식으로 모든 릴레이 기능을 이 기판 안에 집약시켜 운행하는 것으로 신축된 아파트마다 설치되었다. 하필이면 이때 도둑들이 이 옥상 승강기 기계실에 있는 기판을 탐내어 탈취해 가는 바람에 신축아파트 관리소장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기판 1대의 값이 장물업계에서 약 150만원에서 200만원까지 팔았다고 하니 도둑들이 욕심낼 만도 했을 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한 아파트 경비원이 몇 시까지 졸지 않고 있다가 밤 몇 시면 누워 잔다는 것까지 파악을 하고 옥상 기계실엘 올라가 문제의 기판을 뜯어갔을 것이다.

 

 

도난 당한 기판값 퇴직금으로 변상하시오

내가 잘 아는 형님 같은 관리소장님은 공동주택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하지 못했었다. 아무리 설득을 해도 시험을 안 보니 자격이 없었다. 그래도 워낙 실력이 있고 경험이 많아 은평구 어느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대한주택관리사협회에서 계속 각 구청에 무자격자를 퇴출시키라고 압력을 넣었다. 마찬가지로 각 위탁회사에 협조공문을 보내 무자격 관리소장을 채용하지 말 것을 촉구하고 있을 때였으니 이 양반도 위탁회사에 불려가 닦달을 받았다.

 

드디어 근무한지 1년이 지난 시점에 몇 월 말일로 퇴직한다는 각서에 서명을 하고는 아파트 관리소에 돌아와 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입주자대표회장을 만나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아울러 기왕 무자격자로 그만두게 되었으니 퇴직금도 월 급여 지급 시 같이 배려해주십사 말씀을 드리니 감사에게 먼저 결재를 받아오면 같이 지급해 드리겠노라고 말했다.

 

다음 날 퇴직금 지급청구 기안을 해서 감사 퇴근시간에 맞추어 관리소에서 만나 결재를 올리니 대뜸 며칠 전 옥상 승강기 기계실 기판을 도난당한 것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알고 있다고 대답을 하니 소장님 퇴직금이 딱 기판값하고 비슷한데 무슨 퇴직금 청구냐고 변상하고 나가시라고 결재서류를 이 양반 앞으로 밀어 놓고는 관리소를 나가버렸다. 변명이나 설명은 듣지도 않고 거부한 것이다. 그때 이 양반이 아무리 아니꼽고 울화통이 치밀어도 참았어야 했는데 혼자 술집에 가서 소주를 5병이나 마셨다고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사람을 원망한다고 했다.

 

 

기판값 변상할 방법이 그것뿐이었을까

그날 밤 집에서 저녁식사 후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중 쓰러졌고 병원에 가는 도중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이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 감사가 모 은행 대리였는데 나이 먹어 무자격자 밀려나는 관리소장에게 꼭 그렇게 모질게 했어야 하는가 분통이 터졌다.


왜냐하면 기판값 변상하는 방법이 유지보수 용역을 준 승강기 회사에도 협의를 해 볼 수 있겠고, 혹 화재보험 계약자에게도 이 사정을 알려 좋은 방향으로 풀 수도 있었겠고, 정 안 된다 한들 변상할 작정으로 관리소장 얼마, 도난당한 당일 근무자 경비원 얼마 그리고 나머지 직원들 얼마씩이라도 나누어 분담해 변상을 해도 될 일이었는데 알량한 입주자대표회의 감사(원래는 결재권자가 아니다)의 독단으로 57세 나이의 한 사람의 삶을 이렇게 비극적으로 마감하게 만들었다.


이런 일을 당할 때 가슴을 쳐야 할 일이 있다. 이 기판을 도둑질 해 간 인간은 이로 인해 한 사람이 목숨을 잃은 사실을 알겠느냐 하는 것이다. 알 리가 만무하니 더욱 기가 찬 노릇이다. 지금도 관리소장들은 근무지에서 낮이나 밤이나 안전사고는 없는지 돌발사고는 안 터졌는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일하고 있을 것이다. 1998년 4월에 일어났던 그 일을 회고하며 기분이 씁쓸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