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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컬레이터 한 줄 서기의 역설

에스컬레이터 한 줄 서기의 역설

글. 허윤섭(한국승강기안전공단 안전기술연구처장)

에스컬레이터 두 줄 서기와 한 줄 서기에 대한 찬반 의견이 팽팽한 가운데 미국 뉴욕타임즈에 소개된 영국의 한 줄 서기 효과에 대한 실험 결과가 흥미를 끈다. “에스컬레이터의 한 쪽을 걸어가는 것은 소중한 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약간의 운동 효과도 있지만 다른 이용자들의 시간과 안전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는 것이므로 잘못이고, 모두 걷지 않는 것이 평균 시간으로도 더 효과적이다”라는 내용의 기사이다.

한 줄 서기와 두 줄 서기, 무엇이 더 효율적일까?

일반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던 ‘걷는 것이 에스컬레이터 수송 효율을 높일 것’이라는 생각과 차이가 있는 내용이라서 다소 의 아스럽기도 한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영국 런던에서 가장 붐비는 홀보른 역, 77피트(23m) 높이의 에 스컬레이터에서 6개월에 걸쳐 한 줄 서기와 두 줄 서기를 번갈 아 시행하면서 수송 효율을 분석했다. 그 결과, 한 쪽은 걷도록 한 경우가 분당 평균 115명, 두 줄 모두 선 경우는 분당 평균 151명의 처리량을 기록해 두 줄 서기가 약 30% 수송 효율이 증 가하고 시간도 절약되는 결과가 나왔다. 즉, 한 쪽으로 걸어가는 사람은 서 있는 사람보다 빨리 갈 수 있지만 비어 있는 공간이 많 아서 효율이 떨어지고, 그만큼 승강장에서 탑승을 기다리는 시 간이 길어지므로 서 있는 승객의 시간은 오히려 손해를 보게 된 다는 내용이다. 영국의 한 컨설팅 회사에서는 런던 그린파크 역(높이 약 10m) 에스컬레이터에서 며칠 동안 걷기와 서기를 한 다음 데이터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해서 효율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에스컬레 이터에 서서 올라가는데 40초가 걸린 것에 비해, 걷는 것은 26 초가 걸리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서 있을 때 ‘ 전체 시스템 내의 시간’ 즉 에스컬레이터에 도착하여 줄을 서서 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급격하게 감소했다. 40%의 사람들이 걸을 때 서 있는 사람의 평균 시간은 138초, 걷는 사람들은 46초였다. 하지만 모두가 서 있을 때 평균 시간은 59초로 줄어들었다. 걷는 사람들은 13초가 더 소요되지만, 서있 는 사람들은 오히려 79초가 빨라지는 계산 결과였다. 또한 에스 컬레이터에 도달해서 탑승을 위해 서있는 줄의 길이도 73명에 서 24명으로 줄어든 것도 발견했다.

에스컬레이터와 계단, 9초와 16초의 차이

그렇다면 우리나라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걸어 올라갈 경우 서 있는 사람에 비해 얼마나 빨리 올라갈 수 있을까? 우리나라 지 하철에 설치된 에스컬레이터의 평균 높이는 7.5m, 정격속도는 0.5m/s,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사람의 속도 0.58m/s를 기준으 로 계산해보면 아무런 방해 없이 에스컬레이터에서 걸어 올라가 는 경우 14초, 서있는 경우는 30초가 나온다. 걷는 사람은 서 있 는 사람보다 16초를 빨리 갈 수 있다. 하지만 혼잡한 시간대에는 군밀집도가 증가하므로 군밀집도 3인/㎡일 때 계단을 올라가는 속도 0.37m/s를 기준으로 다시 계산하면 17초가 소요되고 시간 차는 13초가 된다. 이 정도라면 굳이 에스컬레이터에서 걸어갈 바에는 일반 계단으 로 걷는 건 어떨까? 과연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시간과 에스컬레 이터에서 걸어 올라가는 시간은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우리나라 지하철 기준으로 혼잡하지 않은 경우 계단을 올라가는 시간은 26초, 혼잡한 경우에는 40초가 소요되는 것으로 계산된 다. 결과적으로 대부분 혼잡한 우리나라 지하철 역의 에스컬레이 터에서 걸어 올라가는 시간은 혼잡하지 않은 계단으로 걸어 올라 가는 것에 비해 평균 9초 빨리 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에스컬 레이터 입구에서 9초 이상을 기다리거나 걸어 올라가는 도중 걸 음을 멈춘다면 계단을 이용하는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에스컬레이터는 빨리 가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편리하게 이용하기 위한 수단이다. 다른 사람의 시간을 희생해서 내가 조금 빨리 가려 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는 뉴욕타임즈의 기사가 다시 한 번 떠오른 다. 9초, 많아야 16초 차이다. 차라리 16초 빨리 집에서 나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