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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임집니다!

내가 책임집니다! 

 

 

유난히 어느 한 동만 승강기 고장이 잦았다. 승강기 유지보수업체들과 실랑이를 벌이면서도 도대체 왜 그 한 동만 유독 승강기 고장이 잦은지 나 또한 의문이 생겼다. 이유를 알고 보니 잦은 복도 물청소. 1년에 한 번 할 물청소를 한 달에 한 번 해야 했던 사정이 기가 막혔다.

 

■ 글 / 장현식 (현 공동주택관리사/ 「머리철새의 울음소리」, 「머리철새 둥지를 틀다」 저자)

 

 

물청소 하는 날이면 승강기 고장

관리사무소장이 관리소에 출근하여 근무복으로 갈아입고 첫 번째 대하는 업무가 관리소장 책상에 올려져 있는 일지 류에 대한 결재업무이다. 각 사람마다 취향이 틀려 출근 즉시 결재하기도 하고 부하직원들 애를 먹이고 오후 늦게 결재하기도 한다.


나는 출근 즉시 결재하는 편인데 매일 하는 결재 중 「전기실 운영일지」는 종종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 신경이 쓰였다. 특히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는 날이면 어김없이 승강기 유지보수 업체로부터 짜증스런 전화를 받아 논쟁을 벌이곤 했다. 그 논쟁의 주된 내용은 ○○동 승강기가 너무 고장이 자주 나서 기사들 보내기가 지칠 지경이니 해결점을 달라는 것이었고 나는 당연히 아직 보증기간이 남아 있으니 이런저런 이유 따지지 말고 승강기가 정상 가동되도록 하라는 주장이었다.


몇 번 이렇게 전화로 충돌하고 보니 도대체 왜 이런 일로 협력업체와 실랑이를 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겼다. 먼저 ○○동 경비원을 불러 왜 승강기 고장이 자주 발생되는가 물어 보니 청소업체가 복도식 건물인 ○○동을 너무 자주 복도 물청소를 해서 그렇다고 전했다. 물청소 하는 날이면 승강기가 고장이 나서 가동을 못해 민원이 생긴다고 말을 이었다.


복도 물청소? 민감한 부분이다. 바로 협력업체인 청소업체 대표를 불러 관리소에서 만났다. 복도식이든 계단식이든 보나마나 소화전 박스에서 호스를 빼내어 청소용수로 사용할 터인데 이 물값은 누가 물며 이 건물이 21층인데 계약서에는 1년에 1회 전체 건물 대청소 하기로 되어 있는데 왜 ○○동만 매월 물청소를 하는가 따져 물었다.


청소업체 대표의 답변인즉 원인 제공자는 ○○동에 사는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총무이사였고 유독 ○○동만 복도식인데 입주민들이 복도에 오물을 흘려 지저분하게 해놓고 퇴근 때면 취객들이 승강기 안에 방뇨를 하여 민원이 등등하니 매주는 못 한다 해도 매월 물로 대청소를 하라 엄명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미화반을 시켜 미화원 3명을 차출해 대청소를 했는데 청소 후 어김없이 승강기가 고장이 나 승강기 유지보수업체가 항의해서 관리소에는 얘기도 못하고 몇 번인가 부품값도 변상해 주었단다. 1년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니 못 한다고 우길 수도 없고 눈물을 머금고 하기 싫은 청소를 하며 버티어 왔노라 말하는데 나 또한 기가 막혔다.

 

 

구배 얕아 승강기 쪽으로 물 유입


도대체 그러면 왜 물 청소 때마다 승강기가 고장이 날까? 그래서 승강기 유지보수 업체 직원까지 불러서 승강기 2대가 설치된 ○○동을 지하층부터 21층까지 점검하게 되었다. 우선 1층 승강기 도어 문턱을 살펴보았다 괜찮은 구배(기울기)였다. 그런데 2층부터 21층까지 무언가 구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금의 건축물은 애당초 거푸집을 승강기 도어 문턱을 구배를 넉넉히 두어 구조물을 만들기에 인조석을 덜 깔아도 웬만한 물이 복도에 넘실 거려도 승강기 쪽으로 물이 누수 되지 않는다.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이곳도 정화조 기사의 실수로 배수펌프가 작동이 안되어 정화조 오수가 넘쳤어도 이 문턱의 구배가 넉넉한 덕분에 승강기로 오수가 넘어가질 못했다. 그런데 ○○동은 승강기 도어 문턱 구배가 너무 안 잡힌 것이다. 내가 설명을 하니 승강기 기사도 그제야 수긍을 한다. 아마도 미화원들은 물 청소를 할 때 층마다 두 곳의 승강기 도어 문턱에 마른 걸레로 둔덕을 쌓고 해당층에 규조토(珪藻土)를 뿌린 후 한 사람은 소화전 호스로 물을 뿌리면서 도어 브러시 모터로 인조석 바닥을 갈고 갔을 것이고 한 사람은 마포걸레로 밀면서 나아가고 마지막 한 사람이 마른 마포걸레로 인조석 바닥을 닦아 나아 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때 밀리는 물이 도어 문턱에 막아놓은 걸레를 적시고 구배가 얕아 승강기 쪽으로 넘어갔던 것이고 사람이 타는 카 상층부는 물론 버튼판까지 물을 먹어 고장이 났던 것이다.

 

당장 관리소에 돌아가 총무이사에게 입주민이 사는 상태에서 승강기도어 문턱을 다시 공사할 수 없으니 매월 물청소는 불가능하다 설명하니 이해를 했고 청소업체 대표에게 작업중단을 통보하니 총무이사 얘기를 하길래 한마디 했다. “내가 책임집니다. 물청소 그만두세요.”